18K 금반지에 세팅된 인조석인 큐빅 지르코니아를 모두 천연 다이아몬드로 바꾸고, 같은 모양에 탁한 암청색의 런던 블루 토파즈를 세팅한 은반지를 하나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받았습니다.
큐빅 지르코니아는 천연석의 대용품인 인조석으로, 18K(75%의 순금 함유)나 14K(58.5%의 순금 함유) 등의 품위가 높은 금제품과는 사실 격이 맞지 않아, 월인공방같이 고객에게 많은 설명을 나누고 물건이 어떤 가치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합의되어야 판매에 이를 수 있는 곳에서는 작업하기 곤란한 점이 있습니다. 반짝이는 보석이 들어가는 순간 금속은 부자재로 격이 떨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귀하고 비싼 금이 떠받치는 정도가 되려면 우주와 지구에 존재하는 기적같은 확률의 아름다움인 천연석이어야 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공과 세공을 아우르고 금속만큼이나 보석에 대한 사랑이 깊은 작업자라면 누구라도 그리 생각할 것입니다. 고객에 대한 설명의 의무를 넘어서 우리보다 먼저 오고 영원할 것을 마주하는 이들의 양심과도 같은 것이지요. 과거 누군가가 ‘반짝임’만을 이유로 판매했던 것을 바로잡는 작업이었습니다. 난발로 보석을 잡는 것이 아니라 감싸고 있는 난집이기에 안에 있는 큐빅 지르코니아를 다 깨어버리고 반지의 뒤에서 조심스럽게 무딘 손드릴을 돌리며 금을 펴서 다이아몬드를 넣고 다시 오므렸습니다. 위계가 정리되고 이제야 제대로 된 얼굴을 찾아준 느낌입니다.
살아서 제멋대로 엉긴듯한 금속의 독특한 모양새를 그대로 몰드 복제하여 은과 블루 토파즈를 세팅하였습니다. 하나가 둘이 되어 나가니 괜히 큰 작업을 한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