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비율의 직사각 블루 문스톤을 세팅하여 비슷한 비율의 사각형 구멍이 뚫린 스카프링을 구상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공방에서 디자인을 제안하는 일은 좀처럼 없습니다. 착용자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고민이 아주 오랜 시간 이어졌습니다. 상시 구동되는 프로그램처럼 메모리를 차지했던 시간들을 청구하기 곤란하여, 삼인검을 잇는 다음 월인공방 기성품 삼는 것으로 공임을 갈음하였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을 모델로 도리아 양식 기둥을 세웠습니다. 한켠에 세팅한 블루 문스톤은 신의 관점에서는 무너진 천장처럼 휑하고, 인간의 관점에서는 지중해 하늘처럼 푸릅니다. 블루문스톤은 반복 쌍정과 침상 내포물에 의한 간섭 때문에 빛의 각도에 따라 반짝임이 달라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래브라도레센스라고 부르는 이런 광학효과 덕분에 신과 인간의 관점에 따라 다른 두 가지 감상이 가능합니다.
신전과 성지는 같은 단어가 아닙니다. 신전이라 불리지만 성지일 리 없는 곳도 있고, 성스러운 땅이라고 하지만 아무것도 지어지지 않은 곳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몇 천 년간 무너져 가면서도 남은 주춧돌이 있다면, 신전이며 성지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을씨년스럽고 쓸쓸한 폐허이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간 사람만이 고독한 기도를 올릴 수 있는 장소일 테니까요. 보석과 주인에게 이 작은 신전이 안식처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