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은전 한 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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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은전 한 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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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해에서 본 일이다.
늙은 거지 하나가 전장(錢莊)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일 원짜리 은전 한 닢을 내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돈이 못쓰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전장 사람의 입을 쳐다본다. 전장 주인은 거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돈을 두들겨 보고 ‘좋소’ 하고 내어준다. 그는 ‘좋소’ 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돈을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 놓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다보며 얼마를 가더니, 또 다른 전장을 찾아 들어갔다. 품 속에 손을 넣고 한참을 꾸물거리다가 그 은전을 내어 놓으며.
“이것이 정말 은으로 만든 돈이오니까?” 하고 묻는다. 전장 주인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다보더니,
“이 돈을 어디서 훔쳤어?”
거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예요.”
“그러면 길바닥에서 주웠다는 말이냐?”
“누가 그렇게 큰 돈을 빠뜨립니까? 떨어지면 소리는 안 나나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거지는 얼른 손을 내밀었다. 전장 사람은 웃으면서 ‘좋소’ 하고 던져 주었다.
그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은전이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보는 것이다. 거치른 손가락이 누더기 위로 그 돈을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벽돌담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 돈을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얼마나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간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그렇게 많이 도와 줍디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칠하면서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뺏아가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고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길에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일 원 짜리를 줍니까? 각전(角錢) 한 닢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동전 한 닢 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한 푼 한 푼 얻은 돈에서 몇 닢씩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돈 마흔 여덟 닢을 각전 닢과 바꾸었습니다. 이러기를 여섯 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대양(大洋) 한 푼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돈을 얻느라고 여섯 달이 더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돈을 만들었단 말이오? 그 돈으로 무엇을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돈,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은전 한 닢」  -피천득

 

원래 수필에 나온 은전은 청나라의 화폐 ‘대양’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전’이라면 엽전이 생각나는지라 공방에서 가까운 인사동에서 상평통보를 하나 얻어서 만들어 보았습니다. 가죽끈을 꿰어 가방걸이 소품을 만들어 보고 싶기도 했고요. ‘은전 한 닢을 가방에 걸고 상해의 거지로 거듭나 보세요!’ 이런 차별화 된 홍보문구 어떤가요.

 

은전 한 닢을 만들기 위해 본뜬 상평통보 진이賑二전은 1679년 숙종 3년에 주조된 것이라고 하네요. 인물의 실루엣에 비정형 착색을 한 후 얕은 레이저 각인을 하였습니다. 언젠가는 조선 후기, 엽전과 서양식 주화의 중간 형태인 독특한 근대 주화를 복원한 은전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물론 그것을 팔아 갖고 싶은 것은 전세계 500개 한정판 몽골 Togrog 은화 시리즈이지만요. 아, 누구나 마음 속에 상해의 거지 한 명씩은 있다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