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EVA00:R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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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Project

한 쪽에만 두 개의 구멍을 뚫은 귀를 가진 분을 위하여 침의 간격이 정확히 맞아 들어가는 귀걸이 하나와 반지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고객께서 맡겨주신 회자청색을 띠는 하나의 블루 칼세도니 원석을 두 개의 쌍둥이 캐보숑으로 연마하였습니다. 제작과정 자체가 의뢰 고객이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로 곁에 두고자 한 에반게리온 프로토타입 파일럿 아야나미 레이를 반영하는 듯 하였습니다.

 

고객이 처음 방문하였을 때에 의도하였던 주문 내용은 이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친구가 어렸을 때 선물해 주었던 로즈쿼츠 구슬을 연마하여 착용 가능한 주얼리로 가까이 두고 아끼고 싶다는 문의였습니다. 그러나 그 로즈쿼츠는 재연마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스톤이었습니다. 안정성을 떨어뜨리는 내부 크랙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넉넉지 않은 학생의 사정으로 친구에게 보석이라 불리는 예쁜 연분홍을 주고 싶었던 마음, 그것을 받아 간직한 채로 어른이 되어서 더 비싸고 좋은 것을 살 수 있어도 굳이 그것을 연마하고 싶은 마음을 있던 그대로 간직하기로 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귀여운 추억을 배경으로 우리는 이산화규소(SiO₂)의 석영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저의 눈에는 분자의 규칙성 유무로 나뉜 칼세도니와 수정이 찹쌀떡과 쌀알처럼 보인답니다. 칼세도니는 수정에 비해 무르고 쫄깃하며 부드러운 것 같습니다. 물론 경도 차이가 없고 한번 갈린 석재가 다시 붙지 않으니 말도 안 되는 착각입니다. 그러나 이런 착각은 비정질의 칼세도니가 오랜 시간 규칙 바른 수정으로 결정되는 과정을 반죽이 낱알이 되는 환상적인 역행으로 상상하게 합니다. 안쪽으로 삐죽거리는 클러스터를 감상하는 속 빈 자수정 괴석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비정질의 칼세도니가 결정질의 수정으로 변하는 시간을 멈추어 톱으로 켠 것입니다.

 

그냥 “의뢰 주시고자 하는 스톤은 재연마에 적합하지 않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면 될 것을, 외로운 곳에 손님이 왔다고 나불나불 수다를 떠는 바람에 칼세도니 귀걸이와 반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월인공방의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뜻밖의 스터디에 강제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생스러운 주문을 하고 싶은 이상한 손님들로 어떤 회사 하나가 유지될 수 있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