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Invinc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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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라면 우리는 천하무적invincible 이라는 Muse의 노래를 좋아하는 의뢰자로부터 주문을 받았습니다.

 

면사 레이스를 금속으로 변환하는 작업에 노련한 동료가 있어 처음에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주 고생을 하였습니다. 레이스를 금속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상당하기 때문에, 한쪽을 오픈하여 사이즈를 조정할 수 있게 하는 식으로 제작하는 게 요령이라는 것을 주문 받을 때는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무작위로 만들어 놓고 맞는 손가락이 있으면 주인 되시라는 호객으로 판매해야 이익이 나는 종류의 반지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아주 섬세한 방식으로 취향이 분명한, 그러나 구체적인 지정이 없는 주문자의 취향을 예상하여 레이스 패턴을 찾는 것부터가 일이었습니다. 그 후에는 이음새 없이 닫혀 이터니티링으로 완결될 가능성이 있는 패턴을 추려 간격을 계산해야 했습니다. 소재를 변환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수에 대비하고도 착오를 교정해야 했습니다. 한 번의 시도마다 하루를 통째로 쓰는 외근이 필요했기 때문에 수 일이 수 주가 되고, 개선을 보고하고 싶다는 중압감에 수 개월이 되어 버렸습니다.

 

처음에는 화이트 골드와 옐로 골드 사이 미묘한 아이보리색을 주문받아 다양한 비율의 18K 합금을 제시한 끝에 결국 클래식한 옐로 골드가 정답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레이스 안팎으로 실낱이 한올 한올 살아있으면서도 반짝이고, 주문자의 손가락에만 맞는 반지가 완성되었습니다. 3D 프린터로 초안을 잡는 세공품 양산의 시대에 조화로운 우둘투둘함과 자연스러운 일렁임이 다시 같은 게 나올 수 없는 반지가, 딱 하나 완성되었습니다. 많이 돌아서 간 확신의 길이었습니다.

 

반지 안쪽에 새긴 Muse의 《Invincible》을 첨부합니다. 뜀박질을 독려하는 빠른 비트도 없고, 도열대로 발을 맞추라고 명령하거나 선동하지도 않습니다. 느리게 걷는 사람이 있다면 재촉하기보다는 함께 가자고 격려하는 존엄의 구호들이 가사로 연이을 뿐입니다. 스스로 읊조리며 숭고를 되새기는 도구로 노래만큼 좋은 게 있을까요.

 

아! 장신구를 파는 사람은 반지가 최고의 각성제라고 해야 하는데 그만 진실의 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