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찬 | 《라스트 세션》 아껴 보기

협찬 | 《라스트 세션》 아껴 보기

1. 처음으로 연극 협찬을 했습니다

연극 《라스트 세션 (Freud’s Last Session)》 국내 초연(2020. 07. 10. – 2020. 09. 13.) 무대 소품 일부를 협찬했습니다. 영화 소품 제작이나 자문🔗은 종종 해왔지만, 연극은 처음이었습니다. 평소에 현장이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극의 내용 자체도 흥미로웠습니다. 국내에는 실험 설계와 통계로 입증하는 미국식 심리학이 일반적입니다. 상담자의 경험과 직관에 의한 통찰력이 상아탑처럼 쌓인 유럽식 심리 분석은 매력적인 텍스트입니다. 숨어듣는 명곡처럼 다소 쑥스러운 마음으로 외면해 온 프로이트와 C. S. 루이스를 읽는 기회로 삼고 싶었습니다.

지인들은 “배우분들 사인도 받아줄 수 있는 거니”, “너도 대학로 관계자구나!” 좋아했지만 현실 모르시는 말씀…! 바쁘게 집중하는 각 분야 프로들의 동선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저는 숨쉬는 객석 의자, 숫기없는 보릿자루 역할을 했답니다. ‘선생님, 훌륭하신 연기에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이런 팬레터도 쓰고 싶었지만 전달할 도리가 없어서 소심하게 포기했을 정도입니다.

극 자체도 정말 재미있었지만, 배우 분들이 오르는 무대가 설득력을 갖도록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안전하게 가자”며 같은 목표를 향해 소통하는 스태프 분들을 멀리서 보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섬세한 작업을 해내기 위해 때로 외곬수로 몰두하는 모난 사람으로 불립니다. 조화롭게 배려하는 협업이 참 아름다워 보였고 부러웠습니다. 일하면서 서로 고맙다는 말을 참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냥 귀퉁이에서 조용히 앉아있을 뿐이었지만, 왠지 찡했어요.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1939년 9월 3일 오전, 런던. 프로이트의 서재.

옥스퍼드 대학의 젊은 교수 겸 작가 C. S. 루이스가 저명한 정신분석 박사 프로이트의 초대를 받고 찾아온다. 루이스는 자신의 책에서 그를 비판한 탓에 불려왔다고 생각하지만, 프로이트는 뜻밖에 신의 존재에 대한 그의 변증을 궁금해 한다.

시시각각 전쟁과 죽음의 그림자가 그들을 덮쳐오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종교와 인간, 고통과 삶의 의미를 넘어 유머와 사랑에 이르기까지 지칠 줄 모르는 논쟁을 이어가는데...

TV와 영화로 친숙한 배우 신구(프로이트 役), 이상윤(C. S. 루이스 役)의 인터뷰를 통해 아름다운 무대와 소품들을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만난 적 없는 무신론자 프로이트와 유신론자 C. S. 루이스가 무대에서 만나 신의 존재에 대해 논쟁하는 이야기입니다.”

– 이상윤(C. S. 루이스 役)

“프로이트라고 하면 정신분석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고 『꿈의 해석』이라는 책으로 세상에 큰 파장을 일으킨 분입니다. 무신론자 입장에서 종교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그에 대한 허점을 파헤치려고 애를 썼던 분이지요.”

“소재가 정신분석 혹은 신의 존재 유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지만 연극 구성과 논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보면 인간의 나약함, 모순적인 점들을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 남명렬(프로이트 役)

“공연 보는 것 자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스마트폰과 경쟁을 해야 하니까요. 고뇌하게 만들고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 즐거울 수 있거든요. 무대 위에서 ‘하나님은 살아있다’라고 외치는 공연을 할 줄은 몰랐어요.”

“제가 루이스를 만드는 가장 큰 목적으로 염두하는 점은, 그가 만드는 파문의 크기를 좀 더 확장시키고 싶다는 거예요. 믿음이 전혀 다르거나 믿음이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른 파장을 던질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 이석준(C. S. 루이스 役)

상업적인 대중 연극은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몰라도 즐길 거리들이 있습니다. 인간의 갈등과 혼돈이 화려한 무대 위에서 펼쳐지니 재미있습니다. 연극을 보는 짧은 시간으로 프로이트 이론을 이해할 수 있다거나 C. S. 루이스가 느낀 영성의 빛이 반짝이는 포만감을 느끼기도 어려운 일이고요.

개막 첫 날 작품을 보고 온 친구는 거의 탈진을 호소하더군요. “더 알고 봤다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지금까지 본 연극 중 대사가 가장 꽉 차 있는 작품이었어. 배우 단 두 명이 그렇게까지 큰 압박을 견뎌내야 하는 무대는 흔치 않아.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알고 갈 걸. 다시 봐야겠어.”

세공품이든 연극이든 이음새와 마감이 중요한 상품은 소비자의 기준에 맞춰 제작됩니다.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그것을 받을 사람의 소양과 안목을 믿고 낙관해 보는 작업입니다. 함께 같은 곳을 보며 같이 공부하자고 독려하여 준수한 안목을 갖춘 고객과 마주하면, 실제로도 좋은 거래로 이어집니다.

[월인공방 인터뷰 | 주간경향🔗] “다이아몬드나 루비 등 값비싼 보석은 그 속성 때문에 만들어지는 모양이 결정돼 있다. 보석을 보는 방법도 학습이 필요하다. 배우고 알 때 이제껏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에 감동할 수 있다”는 것이 보석에 대한 송씨의 지론이었다. 인류가 왜 특정한 물질에 집착하고 가치를 부여했는지에도 역사적이고 물리적인 배경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배워야 알 수 있고, 알아야 제대로 가치를 감상할 수 있으므로 보석상의 테이블은 학교와 같다고 비유했다.

흥행을 위해 가볍게 보러 올 수 있는 재미있는 극으로 홍보하는 것도 필요하지요. 그러나 연출을 비롯한 관계자 분들, 특히 배우 분들께서 많은 독서와 토론으로 대본을 연구하며 무대를 준비하셨다 들었습니다. 어렵게 준비하신 작품인만큼, 깊이 있는 호응으로도 보답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모노 드라마는 내가 내 호흡을 가져갈 수 있어요. 내가 쉬고 싶을 때 쉬면 되고 내가 밀 때 밀면 되거든요. 3인(이상)극은 두 사람 얘기할 때 쉴 수 있어요. 참관이 됐다가 적극적인 인물이 되기도 하는데 2인극은 두 사람이 쉴 새 없이 움직여야 돼요.”

– 이석준(C. S. 루이스 役), 아래 인스타 작성자

연극을 몇 번 더 보고 싶다는 친구를 위해 조금만 더 알면 훨씬 재미있어질 부분을 짚어준다는 게 꽤 길어졌네요. 스포일러가 염려되는 부분에는 [스포일러 주의]를 표시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연극에는 충격적인 반전도, 해결 가능한 갈등도 없습니다. 아마 첫 관람 전 아래의 실마리들을 다 읽고 가도 좀처럼 spoiled 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글은 도리어 저의 무지를 드러내는 오독일 수 있습니다. 모쪼록 다양한 자료들과 함께 참고하시어 더 깊은 즐거움을 찾아내는 마중물로 쓰시기 바랍니다. 이 글이 팬들에게는 이해를 돕는 노트로, 참관 학생 한 명을 허락해 주신 연극 관계자 분들께는 작은 응원이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 공연까지 여유와 안정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2. 이런 분들께 연극 라스트 세션을 권합니다

우리는 과거보다 분명한 언어로 감정과 기분을 분류하고 취향에 맞는 SNS에 분광기처럼 기록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편리한 도구를 구비한 똑똑한 개인은 당연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언어와 사유라는 도구가 지금처럼 정교해지기 전, 특정 민족을 말살할 정도로 절대적이었던 도그마를 맹신하지 않고 직시하며 분석하는 쉴새없는 노력을 엿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리허설 기간 동안 스태프 분들과 함께, 때로는 배우 분들과 함께 객석에서 관람을 거듭하며 이 연극을 추천하고 싶은 친구들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당신도 이런 분이라면, 말이 잘 통하던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연극 한 편 같이 보는 거 어떠냐고.

역사적 인물들의 논쟁과 토론이 재미있다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의 서신 교환 ‘왜 전쟁이 일어나는가’🔗

프로이트  난 도발적인 토론을 즐기는 거요, 지금 우리처럼.
《인셉션》이나 《매트릭스》를 머리 아프게 봤다

꿈, 아버지, 카타르시스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 연대기》는 노골적인 비유라고 생각한다
BBC 《닥터후》에서 〈Empty Child〉를 재미있게 봤다

세계대전을 살았던 어린이들의 가슴아픈 SF 동화. 위 영상은 BBC의 위대한 유산이 된 걸작 〈Empty Child〉 엔딩입니다. 에피소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로이트  우리 동네 아이들이 이 방독면을 좋아해요. 색깔이 다른 것 끼리 서로 바꾸기도 하고. 우리 옆집 여자애는 이걸 ‘미키 마우스’라고 부르더군
《문명》의 찬가를 들어 보았다
루이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게 바보같은 일이 아니고, 박사님이 주장하시는 것처럼 신을 믿는 우리 미약한 인간들이 ‘강박신경증’을 앓는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3. 1939년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하는 1939년 9월 3일을 배경으로 합니다. 정확이 그 날부터 갑자기 시작된 전쟁이었을 리 없죠. 1930년대 말, 세계 이곳저곳에서 다음과 같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인간이 있는 모든 곳에 전운이 감돌았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

유대계 이탈리아인 귀도가 사랑에 빠졌습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

폰 트랩 대령과 마리아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치 세력을 피해 망명했습니다.

《색, 계》

왕자즈가 막부인이 되어 친일파를 암살하기 위해 연극 연습 중입니다.

《킹스 스피치》

조지6세가 버킹엄궁에서 실내 흡연을 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나니아 연대기》

피터, 수잔, 에드먼드, 루시가 커크 교수의 집으로 피난 갑니다.

인류 문명이 최초로 시작된 것은 화난 사람이 돌 대신에 단어를 던지면서 부터이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4. 각론 해례 [스포일러 주의]

(1) 시간

여러분은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하는 1939년 9월 3일 오전, 루이스의 노크를 듣게 됩니다.

얼마 후, 영국 수상 네빌 체임벌린 총리가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공지합니다. [BBC 아카이브🔗]에는 당일 잘못된 공습경보가 울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라디오 방송은 연극의 배경인 1939년 9월 3일 오후 6시, 실제로 영국 국왕 조지 6세가 BBC를 통해 연설한 대국민 호소를 옮긴 것입니다.

(2) 소망과 각오

프로이트  『순례자의 귀향』은 읽지 못했지만 『실낙원』에 대해 선생이 쓴 에세이는 잘 읽었소. 독창적인 관찰력으로 참 잘 쓴 글이었지.

프로이트는 아내 마르타에게 연애 편지를 보낼 때 『실낙원』을 인용했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이나 천사의 말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악마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끔찍한 재앙을 극복할 수 있는지를, 그리고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면, 그 소망으로부터 어떤 힘을 얻을 수 있고, 소망이 없다면, 절망으로부터 어떤 각오를 다져야 하는지를 논의해 봅시다.”

(3) 존재에 대한 감각

프로이트  한 가지 이유 때문이오. 선생같이 똑똑한 사람이, 한때 내 신념에 동조했던 사람이, 왜 갑자기 진실을 버리고 간교한 거짓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난 그걸 알고 싶소.

프로이트는 스스로 ‘발달이론’의 ‘구순충동’을 허락하며 니코틴이 유도하는 도파민을 만끽합니다. 관대한 태도는 나르시시즘같은 학자의 자존심으로도 드러납니다. 그는 사랑의 본질을 나르시시즘이라며, 자신의 모습을 상대에게서 보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다고도 했습니다.

(4) 곰, 동물원, 그리고 초콜릿

루이스  저는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믿지 않기로 선택한다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신의 존재에 대한 더욱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요. 왜냐하면 무언가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걸 인식해야 되니까요.

동물원에 다녀오는 길에 회심을 했다는 C. S. 루이스의 이야기는 그가 회심 전 ‘교회 정신에 대한 생각은 내게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비록 내가 곰을 좋아하듯 성직자들도 좋아했지만, 항상 동물원에 가고 싶지는 않은 것처럼 교회도 그러했다🔗‘고 한 것과 연결해 보면 아이러니합니다.

루이스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잠재한 가능성이 있다면 행위자보다 더 큰 섭리의 설계자가 있음을 추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프로이트는 이러한 그의 전형적인 변증 방식을 루이스에게 되돌려 줍니다. 연극 바깥에서 시작된 루이스의 곰 이야기를 프로이트가 ‘운전하는 곰’으로 극 안에서 완성한다고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5) Sehnsucht

프로이트  독일어로 ‘젠쥬크트Sehnsucht’. 갈망. 오랫동안 난 이걸 느껴왔소.

Sehnsucht는 영어나 한국어로 직역되지 않는 독일어입니다. ‘Sehn’은 동사 ‘그리워하다,’ ‘동경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sehnen’에서 기원했고, ‘Sucht’ 는 ‘중독’ 또는 ‘벽(癖)’이라는 뜻의 여성 명사라고 하네요. [사랑(love)’의 정의? 언어따라 다르다🔗]는 문화심리학에 대한 칼럼과 아래의 영문 위키의 정의를 참고하십시오.

① utopian conceptions of ideal development 이상적 성장에 대한 유토피아적 개념 ②  sense of incompleteness and imperfection of life 삶의 불완전성과 미숙함에 대한 감각 ③ ambivalent (bittersweet) emotions (달콤 쌉쌀한) 양가감정 ④ reflection and evaluation of one’s life 인생의 반추 ⑤ symbolic richness 상징적인 풍요

극중에서는 독일어가 모국어인 프로이트가 내뱉은 단어지만, 현실에서는 C. S. 루이스가 더 많이 썼을 겁니다. 그는 종교적 갈망과 기쁨, 에로스에 대해 영어로 기술할 때 굳이 독일어인 Sehnsucht를 사용했습니다. 한국어 사용자들이 ‘솜씨에서 비롯되는 미묘한 차이’를 ‘뉘앙스’라는 외래어로 쓰듯이요.

“나(프시케)는 최고로 행복할 때 가장 강렬하게 갈망했지요. 우리 세 사람이 바람과 햇볕을 받으며 언덕에 올라갔던 그 시절이 행복했어요. 그 곳에서는 글롬도 왕궁도 눈에 띄지 않았어요. 기억하나요? 그 색깔 그리고 그 냄새, 또한 멀리 보이던 회색 산을 말이죠?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로 하여금 갈망하도록, 항상 갈망하도록 만들었지요. 어딘가에 분명히 더욱 더 많이 있을 거에요. ‘프시케, 이리 오렴’ 하고 마치 모든 사물들이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나는 (아직) 갈 수가 없었고, 또한 어디로 가야 하는 지도 몰랐어요. 정말 괴로웠어요. 마치 다른 모든 새들이 집을 향해 날아가는데, 홀로 새장 안에 갇혀있는 새와 같은 느낌이었어요.” [루이스 다시읽기] 환희와 갈망, 루이스의 삶과 글의 핵심 주제🔗

Sehnsucht와 프시케(정신적 사랑), 에로스(육체적 사랑)에 대한 C. S. 루이스의 글을 알고 본다면, 숲길에 대한 추억담과 극 중반부에 프로이트의 수집품들을 놓고 나누는 대화는 간격을 두고 이어지는 복선처럼 보인답니다.

(6) 방귀쟁이Le Pétomane 조셉 퓌졸Joseph Pujol

프로이트  유머라는 방어기제. 우리 뇌는 공포를 붙들고만 있을 수가 없어. 그럼 아무것도 못 해. 앞으로 나아가야 돼. 무슨 생각이라도 해서 떨쳐내야 돼.

조셉 퓌졸에 관한 전기 영화까지 있다니, 그는 정말이지 당시 서유럽을 풍미했던 개그 차력사였나 봅니다. 물랑루즈에서 방귀에 폭소하던 신사들은 학회장에서 구강기 항문기 등을 논하는 프로이트에게 분노하던 학자들과 얼마나 다른 사람들이었을까요.

내내 신중하다가 방귀 배출 소리에 자지러지게 웃는 두 사람이 처음에는 몹시 유치해 보였고 당혹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컬투쇼의 화장실 개그를 좋아하거나 유튜브 피지 압출 동영상 댓글창에 묘한 쾌감을 고백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적나라한 생리 현상이 주는 이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7) 유대인 ‘기차’ 농담

연극에는 프로이트 저서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 속 ‘상호주관성’에 대한 다음의 유머를 활용한 대사가 등장합니다.

두 유대인이 갈리치아(Galizien, 우크라이나 서부)역의 열차에서 만난다. 한 사람이 묻는다 “어디 가니?”, “크라카우(Krakau, 폴란드 남부 도시)”, 물어본 사람이 벌컥 화를 낸다. “이런 거짓말쟁이가 있나! 넌 크라카우에 간다고 말하면서 네가 렘베르크(Lemberg,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에 간다고 내가 믿기를 원하겠지. 하지만 난 네가 실제로는 크라카우에 간다는 걸 안다고. 그런데 왜 거짓말을 하는 거야?”

지명이나 지리적 위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수도권에 ‘경기도 버스’ 유머가 있는 것처럼 당시 유럽에는 ‘기차’ 유머가 많습니다. 프로이트는 넘겨짚어 의심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통해 ‘진리는 어떤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듣는 사람이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있다고 합니다.

두 대학원생이 2호선에서 만난다. 한 사람이 묻는다 “어디 가니?”, “낙성대”, 물어본 사람이 벌컥 화를 낸다. “이런 거짓말쟁이가 있나! 넌 낙성대에 간다고 하면 다들 서울대에 가려니 하고 알아들으니까 그렇게 말했겠지. 하지만 난 네가 실제로도 낙성대에 간다는 걸 알아. 대체 왜 낙성대(실제)에 가면서 낙성대(서울대)에 간다는 거짓말을 하는 거야?”

상호주관성 예시를 더 간단하게 바꿔 볼까요. 가격을 알려줄 때 “한 장입니다” 할 때가 있습니다. 현장의 분위기, 서로가 가늠하는 상대방의 재산 상태, 평소 거래 규모 등에 따라 ‘한 장’은 천 원일 수도 있고 일 억일 수도 있습니다. 표현 너머 진정한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맥락을 고려하며 인지 에너지가 소비됩니다. 오해 혹은 합일을 통해 긴장이 해소되는데, 이 과정에서 유머라는 개구리는 살아있기도 하고 해부되기도 합니다.

프로이트는 일상 생활의 다양한 실수와 착오 행위를 통해 무의식이 드러난다고도 했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이름 망각, 외국어 단어 망각, 잘못 쓰기, 잘못 놓기, 실수, 착각, 착오 등은 결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작용에 기인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지요. 오귀스트 뒤팽 이야기가 재미있는 프로이트와 라캉 강연 한 편 추천합니다. (1.25 배속 정도로 설정하면 교수님이 경쾌해지세요) 상대방을 파악했다고 여기는 사람, 착각하는 역할 간의 역동성이 재미있습니다.

(8) ‘유대인’ 기차 농담

프로이트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아버지의 모자를 쳐서 떨어뜨려 버렸어. 그 남자는 아버지한테 “유대인! 인도로 다니지 마!”하고 소리쳤지. 아버지는 그 남자가 시키는 대로 인도에서 내려가 진흙탕 속에서 모자를 집어 들었어. 아무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지.

유대인은 서러운 꼴을 당하면서도 자긍심을 잃지 않는다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엄격한 교리와 세속적인 실리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복합적인 인상도 있지요. 농담같은 『탈무드』는 어쩌면 신성모독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시험하며 소수자로 사는 취약함을 직시하지 않았을까요. 자신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이용하여 인간 보편의 기만을 자조하기도 했겠지요.

예를 들면, 가게에서 직원을 뽑으며 ‘1+1은 얼마냐’는 질문에 유대인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떨어졌다, 그는 ‘얼마를 원하세요’라고 흥정했다는 식입니다. 이 내용은 사실 변호사, 정치인, 회계사 등 비교견적으로 영업해야 하는 모든 직군에 있는 보편적인 유머입니다. 핍박받는 사람들이 냉소와 재치를 무기로 삼는 일은 흔합니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은 통찰력이 생길 수밖에 없고, 유머는 그 통찰력의 부산물이니까요.

저는 사실 편견이 있어요. 하얀색 대머리 이모티콘이 폴란드에 가는 알차고 실용적인 정보를 알려주겠다고 하면 무작정 불신할 것 같습니다.

“폴란드에 간다고 하는데 왜 믿어주지 않을까, 그 오해가 왜 웃긴 일일까 저도 참 궁금했는데요^^ 지금까지 함께 알아보았어요~”

(9) 보험 외판원 이야기

프로이트  얼마 후 보험외판원은 숨을 거뒀어. 여전히 무신론자인 채로. 하지만 목사는 보험에 가입했어. 종합보험.

보험 외판원 이야기는 환자의 구애나 설득에 넘어가면 분석치료에 실패한다는 소논문 「전이-사랑에 대한 관찰」 속 프로이트의 비유입니다. 현실에서는 프로이트의 무신론자 성향을 뒷받침하는 저술 자료이지만, 연극에서는 안주할 수 없는 루이스의 소명의식이 얼마나 고단하고 외로운지 드러내며 여운을 남깁니다.

과학은 미분방정식이고 종교는 경계조건이다
- 앨런 튜링

5.   집과 농장을 떠나 산에 오르기 [스포일러 주의]

(1) 아테네상을 찾아서

그리스, 로마, 이집트의 신상을 모으며 전승 신화의 관계와 그 이면에 대해 연구한 프로이트가 유튜브의 시대에 살았다면, 아래의 영상을 흥미롭게 보았을 것 같습니다.

무신론자이면서 다양한 신상을 수집하는 당신같은 사람은 어떤 성향이 있느냐는 물음과 그에 대한 답변은 현장에서 확인하세요. 애’완물’을 출고하는 저의 답변은 위와 같습니다. 문신이든 물건이든 당신이 각별히 사랑하는 그것은 정보의 외장하드, 기억의 단축키, 감각을 낚는 찌 입니다.

 [월인공방 기고 | LUEL]🔗 그런 보석을 심미안의 기준 삼기로 하는 것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태양을 통해 자전을 체감하는, 지구인 각성의 시작이다.

멀리서도 보이는 붉은 점은 너무나 강렬하기에 현실에서 뿐만 아니라 때로 꿈 속에서도 유용하다. …(중략)… 몽환의 풍경 모든 부분에 녹아있는 꿈의 설계자 중 가장 강력한 상징을 받은 자일 터이니.

현란한 인조석의 시대, 생명의 근원에 반응하는 자외선 형광 루비를 판매하는 일은 삶의 여정을 자각하도록 돕는 일이다. …(중략)… 목적지를 몰라 길을 잃을 수조차 없다는 뭇 인생에 적어도 자기 위치를 붉은 점으로 표시하기로 한 사람일 테니까.

지구의 핏방울로 굳은 루비의 관점에서 우리는 잠시 생명을 가진 덕에 주인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오만한 유기체일 뿐이겠지만.

세공사라는 직업 특성 상 아래와 같은 작업들을 완수해 내기 위해서 틈틈이 다양한 분야에 관심가져야 했기 때문에 제게는 이 연극이 더 재미있었나 봐요. (2020년 8월 현재 사정이 있어서 개인 주문제작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판매를 위한 브랜드 홍보 목적으로 협찬한 것이 아닙니다.)

(2) 『쾌락 원리의 저편』, 그리고 『헤아려 본 슬픔』 

프로이트  참전했었소?

루이스  사이렌 소리를 듣는 순간, 다시 전쟁터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원작자인 Mark St. Germain이 두 인물의 만남을 주선한 건 왜일까요. 정말 그들이 드라마틱한 시기에 공존했던 유신론자 무신론자의 대표이기 때문이었을까요. J. R. R. 톨킨과 S. C. 루이스가 판타지라는 도구로 화두의 핵심을 대담하게 꿰뚫어버리던 시대입니다. 항해하던 다윈과 노아가 만났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 상대적으로 온건한 프로이트와 C. S. 루이스가 만나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사상 대립을 부각시키는 홍보 문구와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프로이트는 비엔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꿈의 해석』,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 『정신분석 강의』 등을 출판하며 정신분석학회의 창시자로 활약합니다. 정신분석이 소수민족인 유대인들만의 민족적 관심사이거나 비의에 머물지 않고 보편적인 과학적 체계를 갖추도록 정연함을 추구했지요. 그러나 C. S. 루이스같은 상이군인을 만나며 그는 자신의 이론을 수정하게 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 전장에서 돌아온 병사들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통해 프로이트는 살고자 하는 의지, 성적 충동의 쾌락원리를 넘어서는 죽고자 하는 본능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1920년 『쾌락 원리의 저편』 출간으로 학계에서 퇴출되다시피 한 프로이트는 1930년, 심리학과 문학에 기여한 공로로 괴테 상을 받았고, 현재에는 오컬트적이기까지 한 문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C. S. 루이스의 PTSD에 반응하는 프로이트만큼이나, 프로이트의 자살 예고에 루이스는 격앙됩니다. 연극의 배경으로부터 20여년 후, 예순이 다 된 루이스는 암으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조이 데이빗먼과 초혼하여 단 3년 여의 결혼생활을 합니다. 반려자를 암으로 잃고 쓴 『헤아려 본 슬픔』을 통해 신앙을 회의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요.

두 사람은 각자의 생을 통틀어 가장 아프게 이성과 신념을 뒤흔드는 사건 그 자체, 의인화 된 고통 같았습니다. 추악한 시대에 인간에 대한 지고지순한 태도와 학문적 성취를 일치시켰던 두 위인이 서로의 시련을 마주하는 것, 그것이 바로 《라스트 세션》이 ‘인간의 이야기’인 이유 아닐까요. 신에 대해 고민하는 ‘인간들의 이야기’.

C. S. 루이스의 친한 친구들은 그를 ‘잭’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는군요.  잭이 거닐던 아늑한 벽돌집과 숲길을 둘러보며 긴 글을 마무리합니다.

(3) 객석의 마스크가 완성하는 역설의 펜싱 대결

“멋지다! 영리한 펜싱 경기를 보는 것 같다.”

블룸버그 뉴스의 관람평은 마스크를 끼고 사브르 간격을 유지해야 하는 2020년에 뜻밖에 의미심장합니다. 선명해진 기후변화로 인한 기록적 폭우를 뚫고 당도한 극장, 역설을 통해 시대정신을 논하는 무대 위 열연은 마스크를 쓰고 집중해 주는 관객들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는 퍼포먼스이기 때문이죠.

그때 저는 쫓겨나 떠나온 자리를 서성이며, 책을 나눠 읽을 수 있다면 이 외로움이 덜어질 수 있을까 생각했답니다. 편지를 쓰던 책상과 서재의 장식품들을 보냅니다. 이것은 서투른 강연을 보고 본업에 돌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듯 떠난 누군가의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