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인공방 삼인검 자료

월인공방 삼인검 자료

월인공방 11번째 기성품인 삼인검 판매가 시작되었습니다. 2018년 인월, 인일, 인시에 맞춰 판매 가능한 관제 형식 삼인검 13자루를 제작하였습니다. 펀샵 온라인을 통하여 9점, 오프라인 전시 겸 판매 1점, 큰 도움을 받은 경인미술관 어검당 헌정 1점, 공방 재량으로 2점을 할당하였습니다. 상품페이지 제작을 위해 유통사 에디터에게 보냈던 자료를 공개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과 소장자들의 제품 이해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월인공방의 삼인검 제작 태도]

 

1889년, 프랑스 교육부는 ‘트로카데로 박물관(Musée du Trocadéro)’ 민속학 연구를 위해 샤를 루이 바라(Charles Louis Varat)를 조선으로 보냅니다. 그는 1892년 조선견문록(Voyage en Corée)을 통해 유럽인에게 익숙한 중국과 일찍이 개항한 일본 사이에 있는 조선이라는 국가에 대해 보고했습니다.

조선견문록에 실린 꼼꼼하게 관찰하여 사실적으로 그린 삼인검 삽화는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11번째 기성품으로 삼인검을 결정하고 제작과 완수에 이르기까지 월인공방의 태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가 조선의 삼인검을 보게 된다면 느낄 신비감과 탐구심은 당시 조선의 구성원보다는 이양인의 시각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사려깊은 시선으로 옛 마음들을 존중하며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들의 이상과 한계를 탐구하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던 지역에서 생활하게 된 우연이 있을 뿐, 조선인과 전혀 다른 교육을 받고 자란 조선의 이방인이 아닐까요. 외모와 언어가 국적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오늘날, 홀가분한 정체성으로 다만 태도에 집중하였습니다.

힘 닿는 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다양한 분야의 자문을 구하고 소재의 특성과 한계를 생각하며 문헌에 따라 녹이고 두드렸습니다. 월인공방 삼인검입니다.

[삼인검 정보 개괄]

 

인(寅)은 십이지신의 호랑이를 의미합니다. 만물의 시작인 춘양(春陽)의 시기에 해당하는 양기를 상징하는 호랑이는 음을 물리칠 수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양기가 가장 충만한 순간은 이미 쇠퇴의 기운이 일어나고 있으므로, 강해지는 방향성이 있는 순간을 더욱 왕성한 양기가 있는 시기로 보았습니다.

조선에서는 이러한 음양오행의 철학에 기반하여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 새벽 3~5시)에 도검을 제작하였는데, 4가지 시기를 맞추어 만든 도검을 사인검이라고 하며, 3가지를 맞춘 도검을 삼인검이라고 하였습니다.

삼인검이나 사인검은 그것이 제작된 이유와 방식에서 알 수 있듯이 실용적인 무기가 아닌 왕실의 안녕과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주술적 목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민가에서도 제작되었으나, 특히 왕명에 따른 관제 삼인검 제작은 대규모의 예산과 기술자들이 투입되는 국가적 거사였습니다. 오늘날 청와대에서 장성급 진급자에게 수여하는 삼정검은 조선의 삼인검 하사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사(삼)인검은 다른 특별한 행위를 하지 않고, 단지 소장하는 것만으로도 벽사와 참마가 이루어진다고 믿어졌다. …(중략)… 시간적인 제약 외에도 재료 선정부터 검날과 손잡이에 새겨 넣는 여러 글귀와 다양한 문양은 제작에 많은 경비와 정성이 들어가야 함을 알 수 있게 한다. 여러 단계를 거쳐 제작이 완성된 사(삼)인검은 비로소 벽사와 참마의 힘을 지니게 되고, 이 검은 소장자를 사이한 잡령들로부터 보호해 준다고 한다.”

– 이성곤(국립민속박물관 연구원) 『조선시대 사인검의 연구』 국립민속박물관, 2007

 

검(劍)은 ‘밑동에서부터 끈까지 고르고 순수하게 단련된 양날의 칼(『한한대자전』 민중서림, 1998)’을 뜻합니다. 실제 전투에서는 단기간에 배우기 쉽고 마상에서 사용하기 편한 도(刀)가 더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백일도(百日刀) 천일창(千日槍) 만일검(萬日劒) 이라는 말처럼 검은 오랜 시간 연마한 뛰어난 기예와 차별화 된 권위를 상징했습니다. 삼인검은 검의 상징성이 극대화 된 대표적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속 삼인검]

 

“인검의 ‘의’는 군신간의 의리, 주군과 백성감의 의리를 뜻하는 것으로서 백성과 문무백관이 군왕을 받들어 재앙을 없애고 의로운 정치를 세상에 펴는 것을 상징한다.”

『조선의 도검! 충을 벼루다 | 벽사의 검, 인검과 진검』 육군박물관, 2013

 

숙종 12년 (1686년/청 강희(康熙) 25년) 1월 13일

숙종실록 17권 무진 2번째 기사(記事)

[삼인검을 타조하는데 선혜청의 쌀 등을 호조 병조의 면포를 제급하도록 하다]

임금이 전교하기를, “삼인검(三寅劍)을 타조(打造)하는 데는 물력이 너무 많이 들어서 내수사(內需司)에서 충당해 주기가 어려우니 선혜청(宣惠廳)의 쌀 30석(石)과 돈 2백 냥(兩) 및 호조·병조의 면포(綿布) 각 2백 필(匹)을 제급(題給)하도록 분부하라” 하였다.

삼인검이란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에 타조하는 것을 말함인데, 사귀(邪鬼)를 물리칠 수 있다.

 

성종 9년 (1478년 명 성화(成化) 14년) 3월 11일

성종실록 90권 계유 2번째 기사(記事)

[창원군 이성의 사건을 의논하다]

종부시(宗簿寺)에서 아뢰기를,

“창원군(昌原君) 이성(李晟)이 고읍지(古邑之)를 죽인 것은 사적(事跡)이 현저하고 여러 사람의 증거가 명백하니, 사세가 덮어 가리울 수 없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신은 본래 고읍지(古邑之)라고 일컫는 여인을 알지 못하며, 전후(前後)에도 여인을 살해한 일이 없습니다. 집안에 다만 (살상 무기가 아닌) 삼인검(三寅劍)과 삼진검(三辰劍)이 각각 한 자루씩 있을 뿐이고, 또 환도(環刀)는 없습니다.’ 합니다. 비록 되풀이하여 추궁해 따지었으나 조금도 승복(承服)하지 않습니다. 청컨대 성상께서 재단(裁斷)하소서.”

하니, 어서(御書)로 이르기를,

“증거에 의거하여 조율(照律)하라.”

 

연산 7년 (1501년 명 홍치(弘治) 14년) 1월 30일

연산군일기 40권 기묘 2번째 기사(記事)  

[학문과 정사를 닦기를 청하는 대사헌 성현 등의 상소]

삼인검(三寅劍) 같은 것은 이 무슨 물건입니까. 재앙을 물리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데, 조관들이 그 역사(役事)를 감독하여 맡고, 일을 하는 군사가 무려 수백 명이나 되고, 대장간을 궁중에 설시해서 밤낮으로 쇠를 녹여 두드리니, 이것은 모두 나라에 이익이 없고 백성에게 해만 있는 것입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이 폐단을 깊이 알아내어서 급하지 않은 일은 멈추게 하고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기를 바라옵니다.

조선 현종 대 문신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 1597~1673)의 시문집(詩文集)

《동명집(東溟集)》 11卷 三寅劍歌

 

吾聞 내가 들으니

三寅之劍能辟邪。삼인검은 능히 요사스러운 기운을 막는다 했는데

許侯得之信奇絶。許侯가 얻은 칼이 진실로 기이하고 절세에 뛰어나네

借問如何號三寅。묻노니 왜 삼인검인가

鑄用寅年與月日。寅年, 寅月, 寅日에 만들었기 때문이라네

猛虎在山百獸恐。맹호가 산 속에 있으면 짐승들이 떠는 법

鑄劍故用寅年月。그래서 寅年, 寅月에 검을 만든다네

未出匣中斗牛衝。칼집 안에서도 북두칠성 견우성이 빛나니

看來鋩鍔開芙蓉。칼날을 보고 있노라면 연꽃이 핀 듯

雪霜彷彿白額虎。눈서리같은 날빛은 백호를 방불케 하고

雷雨變化蒼精龍。뇌우같은 섬광은 청룡의 창연함과 같다

龍身虎氣相交錯。용의 몸과 호랑이의 기운이 얽혀

倏見風雲起素壁。삽시간에 눈보라가 일듯

魑魅魍魉皆辟易。온갖 사령과 요괴를 쫓아내니

許侯正直眞相敵。許侯의 곧고 바름이 실로 맞설만 하다

許侯曾在昏朝中。許侯가 일찍이 혼란한 조정 속에서

上書叫閽蓬萊宮。蓬萊宮에 원통함을 호소하였네

請借斬馬斬佞臣。청컨대 참마검 빌려 간신을 베고 싶다 했으니

直氣豈不爭雌雄。곧은 정기가 어찌 자웅을 다툴 수 있으랴

壯志如今成皓首。장렬한 뜻이 이제는 늙고 말았으니

摩挲玉匣長歎久。옥칼집을 어루만지며 길게 탄식하노라

東海三山動巨鼇。동해의 삼산을 커다란 자라가 요동치게 하니

安得猛士頭虎毛。어찌해야 호랑이털 모자 쓴 용사 얻어서 (一作持此刀)

一爲斬斷淸風濤。맑은 바람 이는 파도 단칼에 베어버릴 수 있으랴

[월인공방 삼인검의 원형들]

 

“현대의 한국인들, 그 중에서도 도검에 관심이 있다는 이들조차 조선시대의 환도에 대해서 정형화된 고유의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하는데 반해서 유독 사진검, 삼인검과 같은 인검 계통의 도검은 그 종류와 크기와 현태의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이미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칼이다.

동시에 인검이 만들어진 구체적인 의미는 모른다 해도, 일반적인 칼과 다른 부분, 또는 막연하나마 신령함이 깃든 도검이라는 정도는 인지를 하고 있는 매우 특별한 칼이다”

– 이석재(경인미술관 관장, 전통도검연구가) 『형이상학의 과학 | 동양철학의 세계관을 집약시켜 구현한 칼, 인검과 진검』 월간 과학과 기술 8월호 칼럼, 2006

 

국립고궁박물관(www.gogung.go.kr) 소장 사인참사검 ▽

월인공방 삼인검의 전체적인 모양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삼인검을 본땄습니다. 검병에는 三의 古字인 弎을 썼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www.gogung.go.kr) 소장 삼인검 ▽

검신의 별자리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인 철제금은입사사인참사검의 알코르 표기 북두칠(팔)성과 28수 천문도 표기에 따라 191개의 별을 새겼습니다. 위의 ‘조선견문록’에 삽화로 수록된 사인검 중 하나입니다. (별자리는 검결이 아닙니다.)

옛 지상의 사람들은 별자리를 통해 보는 하늘의 뜻대로 농사를 짓고 길흉을 점치며 일생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동양적 사고관은 검신에 새긴 별자리에 깃든 신령함이 요사스럽고 간특한 잡령과 괴이한 변고를 막는다 여겼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소장 철제금은입사사인참사검 ▽

검신의 검결 27자는 육군박물관 소장 은입사사인검의 방향과 간격을 따랐습니다. 雷의 이형동의자인 靁를 썼습니다.

乾降精坤援靈日月象岡澶形撝靁電   運玄座推山惡玄斬貞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http://www.kma.ac.kr/kma05/kma05main.do) 소장 은입사사인검 검신 ▽

[삼인검의 제작 목적 ①: 순양검으로서의 삼인검]

 

동양에서는 간사한 요괴를 베고 악한 마귀를 물리치는 참요제마(斬妖除魔), 제간서악(除奸鋤惡)을 위해 벽사(辟邪) 목적으로 양기를 강화한 순양검(純陽劍)을 제작하였습니다. 삼인검과 사인검은 양기를 강화한 순양검(純陽劍)의 일종입니다. 검에 양기를 집약하는 원리와 방식을 음양오행과 천간지지에 대한 동양철학으로 체계화 한 도검 형상의 부적입니다.

[제작 원리에 따라 삼인검을 만드는 시간]

 

현재의 한국을 사는 우리도 도교의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십이지신이 정확히 몇 시에서 몇 시를 뜻하는지 모르는 현대인도 말(午)의 시간인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의 중간인 낮 12시를 정오(正午)라고 하고, 쥐(子)의 시간인 밤 11시부터 새벽 1시의 중간인 밤 12시를 자정(子正)이라고 합니다.

쥐(子)와 소(丑)의 시간을 지난 다음 이어지는 호랑이(寅)의 시간 새벽 3시에서 5시, 바로 삼인검이 만들어지는 시간입니다. 인시(寅時)의 시작을 새벽 3시로 볼 것인지, 새벽 3시 30분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역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했기 때문에, 월인공방은 인월 인일 새벽 3시 30분에서 5시 사이 삼인검신을 제작하였습니다.

본래 날을 달구고 두드리며 식히는 과정을 반복하여 단단하면서도 질긴 성질의 만드는 것이 도검 제작의 기본입니다. 철은 서냉과 급냉을 반복하여 인성과 경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월인공방 삼인검 검신의 소재인 92.5%의 정은은 그 특성 상 담금질을 통한 성질의 변화가 미미합니다.

소재가 지닌 특성과 한계를 감안하여 검신 제작의 주요 공정을 ‘날을 세우는 작업’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음력 1월인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를 기다려 세공으로 검신의 모양을 잡고 날을 벼리는 철야 작업을 하였습니다.

[삼인검의 제작목적 ②: 삼인검이 상징하는 군신유의]

 

조선의 도읍이었던 서울 강북 도심 곳곳의 유적과 지명에는 도교와 유교적 사상이 함께 녹아 있습니다. 조선시대 경복궁에서 하늘과 별에 제사를 지내던 관청인 소격서는 현재 소격동이라는 동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소격서에서 도교의 최고신인 삼청을 모시던 삼청전이라는 전각은 삼청동이라는 동명이 되었습니다. (조선 도읍의 풍수 정보 삽입시 숙정(靖)문과 홍지(智)문에 대한 부가 설명 요망)

유교 사상에 기반한 조선 왕조였으나, 도교의 방위신앙에 따른 시간과 날짜에 따라 살았습니다. 조선의 왕과 신하는 불교적 상징이 도교적으로 채색된 단청 밑에서 유교의 나라를 논했습니다.

삼인검 또한 불교의 길상문인 여의두문과 연엽문으로 검병을 장식하고, 도교의 십이지신과 음양오행에 따라 제작한 검신에 주문의 형식으로 의기를 다지는 검결과 28수 별자리를 새겼습니다. 호랑이가 상징하는 군신유의(義)의 왕국을 위한 호랑이의 검이었습니다.

[제작자의 한줄 감상]

 

명분(名分: 군신, 부자, 부부 등 관계에 따라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을 위해

명분(命分: 이미 정하여져 있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천운)에 따라

만들어진 검 모양의 부적, 삼인검

[에디터님께 당부드림]

 

인검이나 진검은 강력한 맹수와 신수를 주제 삼고 있는 칼이나, 그들이 도리와 윤리의 상징이 된 방식에 주목해야 합니다. 무력이나 용맹을 주된 가치로 삼는 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인검은 장수에게 주는 부월과 같은 용도가 아니었습니다. 서책을 읽고 상소를 올리는 사대부가 차라리 인검과 가까웠습니다.

삼(사)인검은 실용적인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삼인검을 제작하면서 반지의 제왕 1편에 나오는 ‘스팅’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호빗들이 스팅을 휘두를 때보다는 나즈굴이 가까이 오자 빛나던 순간의 스팅이 떠올랐습니다.

월인공방 삼인검은 소재의 특성 상 ‘총포ㆍ도검ㆍ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성별과 지위를 아우르는 중립적인 공예 문구 상품으로서 기획하였습니다.

삼인검을 공부하고 제작하는 데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고려대학교박물관, 경인미술관(어검당), 육군박물관, 국회도서관 등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더 필요한 이미지나 내용, 추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요청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