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인공방 | 사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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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문

사과문

안녕하세요. 월인공방 사장 송진경이 (주)익선다다에 저지른 무례와 그 까닭을 밝히고 사과하는 글을 올립니다. 이는 (주)익선다다의 공동 사장 중 한 명인 박한아 사장의 거듭된 게재 요청에 의한 것입니다.

I. 序

 

월인공방의 트위터는 정제된 글로 공방 소식과 포트폴리오를 올리는 공식 계정 @wol_in 과 구성원의 사적인 신변잡기와 의견을 끄적이는 사담 계정 @wol_in_ 으로 이분화 되어 있습니다. 2012년도 개업 후 본래 보석 정보와 작업기에 대해 올리고자 하였던 사담 계정은 2015년부터 익선동의 변화를 마주하는 당사자 개인의 감상을 읊조리는 일기장을 겸했습니다. 오타와 비문이 많은 자괴감 가득한 혼잣말이 누군가에게는 본업을 제쳐둔 황당한 행보로 보였을 것입니다.

이런 혼잣말이 저에게는 ‘고통을 들여다보며 익숙해지는 방식으로 역치를 높여가는’ 생존법이었으나, 아름답지도 않았고 불편한 이야기여서 그런지 팔로워도 많이 끊겼습니다. 상업적인 생존 전략에 완벽하게 반하는 길을 택한 셈입니다. 저 나름으로는 의리와 절개를 지킨답시고 놓은, 소심하다면 소심하고 대담하다면 대담한 자충의 수들이었습니다. 곁에서 지켜보며 기다려 주신 유통사 펀샵의 관계자 분들과 더딘 작업 진행 사유를 받아들여주신 주문자 분들께 심심한 감사를 전하며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풀겠습니다.

II. 本

 

1. 사과문의 배경

 

(1) 2016년 4월 26일까지의 상황(사과문 작성 사유 1)

4월 26일까지의 몇 달 간 월인공방의 일상은 이러했습니다. 상담 하러 온 고객들은 천장에서 떨어지는 작은 돌과 흙가루를 저와 함께 맞았습니다. 헐거운 벽과 천장 사이로 들어와 실내에서 번쩍이는 공사 불꽃을 보며 고객의 집중이 흐려지는 일도 많았습니다. “트위터에서 읽기는 했지만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 글썽이는 고객에게, 그래도 매일 겪다보니 그럭저럭 견딜 수 있게 되었다며 외려 으쓱거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공기청정기 안에 가득 쌓인 붉은 흙을 닦아내고 ‘서랍 안’의 먼지를 청소하면서 언제까지 이런 날들이 지속될는지 아득했습니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 저희 공방 옆집은 작은 귀금속 공장들이 모인 한옥이었습니다. 특히 벽을 맞댄 곳은 3D 프린터가 있던 곳이라 벽에 못을 하나 박으려 해도 먼저 찾아가 몇 시에 몇 개를 두드릴 예정인데 괜찮겠냐며 물었습니다. 3D 프린터가 흔들리면 출력물의 z 축이 어긋나 세공 기술자들은 일을 망치게 됩니다. 이렇게 서로 예의를 지키던 이웃들이 몹시 공교로운 방식으로 쫓겨나듯 원하지 않던 이사를 해야 했고, 때맞춰 한옥의 미를 재발견한다는 의욕적인 젊은이들이 그 공간을 계약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매일 인사하던 업계 동료들이 그리 되었다니 마음이 좋지 않으면서도 ‘카페가 들어온다면 깨끗한 화장실이 생길테니 종종 팔아 주기도 하면서 한 달에 몇만원이라도 주고 화장실을 쓰게 해 달라고 해야지’ 생각한 게 사실입니다. 방문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한옥인 저희 작업장과 사무실 화장실 사정이 좋지 않거든요. 탐탁지 않은 방식으로 이웃들이 나갔지만, 새로운 이와도 인사하고 지내다 보면 좋은 점을 발견하며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공사가 진행되며 그곳이 (주)익선다다의 프로젝트인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무난히 지내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그 회사의 사업 방향에 의문을 제기해 온 입장이었으나, 일하는 이들과 인사하는 날들이 쌓이면 변하겠거니 했습니다. 일기장 같은 트위터에 그때 그때의 속상한 이야기를 했어도, 정작 사람을 마주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 년 정도 진행된 공사는 제 마음의 준비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월인공방은 2012년 개업 이후 아래의 작업장에서 세공 일을 했습니다. 월인공방 사무실 옆에 주소를 같이 쓰는 가정집이 붙어있듯, 작업장도 주소를 공유하는 가정집이 딸려 있습니다. 2016년 하반기에 저희 작업실과 옆 가정집 벽이 매일 큰 충격으로 진동했습니다. 벽을 공유하는 맞은편 집이 어느날부터 벽을 아주 세게 치기 시작했습니다. 예고나 양해 없이 이른 아침부터 불시에 진동과 소음에 시달렸습니다. 그 벽은 공구를 쌓아두는 앵글이 설치된 벽이었기에 저와 공방 식구들은 매일 날붙이들에 깔려 크게 다칠지도 모르겠다고 진지하게 걱정했습니다.

아침마다 공사장에 찾아가 “아이구~ 그냥 한번 와 봤어요. 저희가 죽을까봐…” 능청을 떨었습니다. 찾아갈 때마다 항의할 공사 감독이 없어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저희도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이었던지라 인부들을 비난하지 못하고 다만 언제 끝나냐, 그거라도 알면 며칠 더 견딜 수 있겠다, 공사 안전하게 하시라는 말만 하고 왔습니다. 그 곳은 2016년 늦가을에 (주)익선다다의 <엉클 비디오 타운>으로 개업하였습니다. 개업 다음날부터는 매일 작업장 벽 너머에서 밤 늦게까지 소음이 연이었습니다. DVD 감상실이라고 하던데, 왜 공간의 방음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옆집에서 이렇게까지 큰 소리가 전해오는지 매일 궁금합니다.

<엉클 비디오 타운>의 공사가 한창일 때 월인공방 옆의 <별천지> 첫삽을 떴던 것 같습니다. 정화조를 묻는 공사를 마쳤다고 했는데, 며칠 후 정화조를 또 묻는다며 땅을 다시 팠습니다. 꽤 큰 한옥이니까 예상 손님수가 많아서 큰 정화조가 필요한가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돌연 공사가 중단되었고, 그게 정화조를 묻는 공사가 아니라 허가 없이 지하층을 파던 공사였다는 이야기를 동네 분들에게 들었습니다. 지하 와인셀러를 만드려나 생각했는데, 지하 디스코텍을 만드는 중이라는 사실은 한참 후 알게 되었습니다. 

종로는 땅 파는 공사가 빠르게 진행되기 어려운 지역입니다. 옛 궁궐 앞이라 어디든 땅을 파면 유물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시공이 예정되었는데도 몇 년 씩 유적 발굴 펜스가 쳐지는 것이 십상이었습니다. 문화재 보호정책이 사유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항의하는 이들도 자주 봅니다. 종로 한복판, 사방에 관공서가 있으며 시민들의 주목을 받는 동네에서 대낮에 그런 불법이 대놓고 일어났다는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잠시 주춤했던 공사는 얼마 후 재개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한옥 위에 2층이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무거운 빔과 철근, 사각봉을 잘라내고 땜하는 굉음과 진동이 연일 계속되었습니다. 주변에서 생활하는 여러 분들이 저를 만나면 “너무 괴롭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누가 봐도 명백한 불법이다. 합법 공사도 견디기 힘들 거리인데 불법으로 이렇게 사람을 괴롭힐 수는 없는 거다” 하소연했습니다. “내가 신고해서 공무원이 다녀갔다. 우리도 이렇게 괴로운데 바로 옆에 있는 월인공방 사람들은 오죽하겠나. 우리 동네 사람들 다 한번씩 신고했다. 너희도 신고해라.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시에 아무 신고도 못했습니다. 땅을 무단으로 파는 것은 문화유적과 관련되니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옥에 층을 올리는 것은 불법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신고를 독려하는 주민들도 연락해야 한다는 부서를 모두 다르게 알려주었습니다. 예전에 익선동 주민 모임이라고 홍보된 사실상 상인 모임에 처음 초대받던 날, 저는 “동네에 사는 분들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상업활동을 해야 당신들이 내세우는 ‘상생’이 설득력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익선동은 상업 지역입니다. 개발되는 게 이상한가요. 사람들이 이사하는 게 문제 있나요? 저보고 뭐 어쩌라고요”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그런 일도 있고 해서 저는 동네의 변화에 제가 모르는 합당한 이유가 있거나, 불법처럼 보이더라도 잘 모르는 합법의 조건들을 준수하고 있는 것일 수 있으니, 괜히 신고해서 남의 공사를 방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트위터에는 2층 공사 사진을 올리며 ‘불법이 더욱 대담해 지나 보다’는 취지로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옮기긴 했으나, 그것은 개인적으로 투덜댄 것이었고 법적으로 항의하는 문제는 신중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활동가들이 서울시의 위탁을 받아 익선동의 변화를 살피는 <주민소통방> 김종겸 팀장에게 한옥 개조의 불법성 검토에 관한 정확한 신고처가 어디인지 묻고 답변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박한아 박지현 사장의 인터뷰 “느림과 쉼의 미덕이 살아있는 동네 만들어야죠”가 언론에 떴습니다. 그로 인한 여러 반응이 나오면서 저도 정신이 없는 사이, 주민 신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공사에서 눈에 보이는 부분의 2층은 내려졌습니다.

철거될 때도 기쁘지만은 않았습니다. <별천지>의 공사도 현장감독이 부재한 때가 많았습니다. 저희 공방 사람들과 동네 사람들은 공사 때문에 불평하다가도 인부들에게는 “당신들도 고생이 많습니다. 원망 받을 분들이 아닌 것을 알고는 있으나 저희도 답답해서 그렇습니다. 욕을 해서 미안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2층의 철골을 내리며 “안 좋은 소리 들어가며 한 공사인데 저희라고 뿌듯하기만 하겠습니까. 그래도 열심히 한 작업인데 철거하라니 속상합니다” 하시던 인부 분이 생각납니다. 어느날은 <별천지>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 한 분이 오셔서 “죄송한데 저 물 한잔만 부탁드립니다”라고 하셔서 물을 드린 적도 있었습니다. 하필 그 때 함께 상담을 하던 고객이 “익선다다… 정말 대단하네요. 물도 안 주는군요.”라고 하셨고 저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익선다다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더욱 심화되는 일이었습니다.

위의 트윗 twitter.com/wol_in_/status/849429406355398656 와 twitter.com/wol_in_/status/849430935229661185 은 삭제되었습니다.

 

종종 <별천지>의 현장감독이라며 덩치 있는 남성이 있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분께, “동네 사람들이 다 불법이라고 하던데 그런가. 합법 공사여도 괴로울 판에 불법 공사때문에 모두 힘들어한다. 우리는 말뿐인 사과조차 한마디 없는 게 가장 놀랍다. 제일 싼 주스라도 사 들고 와서 가식적인 사과라도 해 달라. 어차피 각자 잘 되려고 하는 일들인데 며칠 더 참으면 끝날 공사를 물고 늘어지려는 것이 아니다.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한마디만 들으면 지금처럼 괴롭지는 않을 것 같다. 제발 미안하다 한 마디만 해달라. 부탁한다” 말했습니다. 몇 번 더 사과 요청을 했지만 현장 감독이라는 이는 절대로 미안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내가 현장 감독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 공사는 박한아 박지현 사장의 지시대로 이루어질 뿐이다. 그 사람들에게 찾아가라”는 답변만을 받았습니다.

그런 답변을 두어번 더 듣고서도 “자꾸 사장 둘에게 미루지 말고 그냥 당신이 공사 때문에 불편이 많으실텐데 죄송하고 빨리 잘 끝내겠다고 한 마디만 해 달라” 계속 요청을 했습니다. 어떤 때는 제가 아무리 얼굴을 들이밀어도 시선을 피하며 없는 사람 취급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회사 대표나 사장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두 여자가 시킨 것이다. 그 여자들 찾아가라니까”라는 여성혐오에 가까운 대답을 듣기도 했습니다. 우리 공방 식구들은 그 무렵부터 (주)익선다다의 박한아 사장과 박지현 사장을 ‘불법 공사 교사자’라고 저희끼리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월인공방이야 흙먼지를 치워가며 살 수 있었지만, 가정집인 안채는 먹고 자는 천장 위로 서까래에서 떨어진 흙들이 계속 쌓였을 것입니다. 공포와 불쾌함에 공동 민사소송도 고려해 보았으나, 소장에 쓸 피해액을 산정하기가 곤란하여 분한 마음을 매일 삭히며 박한아 박지현 사장을 ‘불법 공사 교사자’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2) 2017년 4월 27일 오후 6시 경(사과문 작성 사유 2)

 

2017년 4월 27일은 오후 4시에 빈티지 태엽시계 수리를 1건 접수하였고, 4시 반 이후 22K 기념 뱃지 12개의 출고를 하였습니다. 그 이후 긴장을 풀고 숨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공방 옆에서 몇 달 간 벽을 두드리고 빔을 세우던 괴로운 공사가 그 날은 잠잠했기에 그 평온이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눈곱에 흙먼지가 까끌거리지 않아서 좋은 날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당일 오후 6시, 평소 인사드리고 안부를 묻던 노인 두 분이 공방 문을 두드렸습니다. “옆집에서 마무리 청소를 불러서 간단하게 해주고 오는 길이다. 내일부터 오픈한다니까 좀 시끄러워도 참아달란다” 말씀하시고 가셨습니다. 소소한 일거리가 생기면 일당을 받고 해 주시는 분들이었고, 저희 공방도 일손이 필요하면 가장 먼저 여쭙는 분들입니다. 주변 이웃들에게 내일의 개업 소식을 들었냐고 물었는데 아무도 몰랐습니다. 월인공방에만 개업이라 음악을 좀 크게 틀어도 참아달라는 이야기가 평소 친분 있던 동네 노인들을 통해 전해온 것을 이상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공사 기간에 일어난 여론의 변화를 의식하고 발언력이 있는 이에게만 영리한 수를 써서 소식을 전한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었습니다. <별천지>에서 의도적으로 저희 공방을 겨냥하지 않았고 노인 분들이 평소 친한 제게 지나가다 알려주신 말을 확대해석한 것 같습니다. 매일이 괴로운 몇 달을 원망 속에 보내고 나니 상상하기도 끔찍한 교활한 악의를 가정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려니, 그런 사람들이 이웃 되었다는 것에 스스로 너무 괴로웠습니다. 저와 비슷한 또래 사람이 그 정도로 악의적일 수는 없을 것 같아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다음날 저는 노인들이 있는 자리에 가서 “어제 그쪽(별천지)에서 오셔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까, 가신 다음에 제가 마음이 좋지는 않았어요. 알고 계시죠? 제가 그쪽 사람들 볼 때마다 사과 한 번만 해 달라고 애걸했었잖아요. 옆에 사는 사람을 그렇게 취급하던 애들이니까…” 했더니 “그러게… 걔들 속내가 빤히 보였지. 그래도 네가 신경은 쓰이나 보대” 하시더군요. 이 말도 선의로 이해할 수 있었는데, 저는 연이은 피로에 지쳐 (주)익선다다를 더욱 불쾌한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트윗을 작성하였습니다. 박한아 사장이 본 트윗을 삭제할 것을 명하였기 때문에 부득이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위의 트윗 twitter.com/wol_in_/status/857868901576605697 과 twitter.com/wol_in_/status/857871646958297088 은 삭제되었습니다.

 

이후 박한아 사장은 제가 사무실에서 작업실로 이동할 때 큰 소리로 “선생님! 선생님? 거기 잠깐 서 보세요. 저랑 이야기 좀 하세요! 선생님!!!” 부르며 따라다녔습니다. 저는 위의 일들로 수 개월 간 시달린 끝이라 (주)익선다다 관계자 누구라도 보기가 힘겨웠습니다. 평소 보석이나 귀금속과 관련된 고객의 주문을 실행하려면 마음의 평온이 필요합니다. 마주치고 대화하는 이 또한 옥석에 그러하듯 고지식하게 가려야 한다고 생각하여, 무법자라 불리는 이의 부름에 응하는 게 좋지 않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박한아 사장에게 저는 “불법 공사 교사자와는 말을 섞을 수 없습니다” 라고 답하고 매번 자리를 피했습니다.

며칠 후 <별천지> 청소를 했던 할머니가 울먹거리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인터넷에 박한아를 모함하고 다닌다며? 나는 평소처럼 가서 청소해 준 것인데 왜 그렇게 사람을 못되게 험담하고 그러냐. 박한아가 너랑 이야기하려고 한 것도 다 무시했다면서? 왜 그러니. 나는 그런 사람 아니다. 나를 욕보인 거니. 나는 누가 시킨다고 돈 받고 프락치 짓거리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나는 내 뜻대로 하는 사람이야. 나는 프락치질 하라고 더럽게 돈 받은 게 아니야.”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 수도 있고, 제가 아주 악질적인 방식으로 우연한 일을 나쁜 인과관계로만 조합하여 받아들인 비뚤어진 인간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제가 제기한 의혹에 대해 박한아 사장은 이메일을 보내거나 트위터를 통한 공개 반박이나 해명문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상황을 전혀 모르는 당사자에게 찾아가 야비한 월인공방 사장이 당신을 모욕한 것을 아시냐고 했습니다.

온라인에 제기된 의혹 때문에 불쾌해졌다는 이유로 그 상황을 모르는 이웃이 소환된 상황에 저는 죄책감과 충격을 느꼈습니다. 진위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생각해 할머니에게 바로 사과했습니다. “제가 그간 너무나도 괴롭게 시달리다 그만 이웃 된 사람들을 오해하고 말았습니다. 오해가 심했고 악의적이었습니다.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느라 저도 몹시 괴로웠는데, 할머니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미워하는 마음을 풀고 다음에 기회 되면 사과를 하겠습니다.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화해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나빴습니다. 아무리 괴로워도 그런 생각은 하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죄송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런 분들이 아니십니다.”

노인들이 공방 문을 두드리던 날, 저는 마음이 정말 참담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더한 일이 생겼습니다. 트위터에 익선동 이야기를 하며 ‘우리’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저는 이 곳에 살고 있는 분들과는 입장이 다릅니다. 제가 아무리 그분들에게 공감한다 해도, 동네 노인분들보다 더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훗날 참고할만한 기록이 되도록 버둥거리던 온라인상의 일에 현실의 사람이 끌려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된 날 저는 별로 좋지 않은 밤을 보냈습니다. 모두 스스로 초래한 일이었습니다. 종로에서 꼿꼿하게 늙어온 노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3) 5월 11일 오전 11시 경의 일

 

5월 초, 풀어놓기에는 매우 긴 사연이 있어 5월 5일 트위터의 사담 계정 @wol_in_ 활동을 중단하였습니다. 이 또한 익선동과 관련된 일이나, 이 글의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아무튼 당일의 계정 폭파, 준말로 계폭이라고들 하는 일로 @wol_in_ 의 계정 글들은 30일 간 볼 수 없고 리트윗도 불가능해졌습니다. 5월 11일 이후 박한아 사장이 수 번 찾아와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 지금도 퍼지고 있는데 어쩔 거냐, 빨리 공개사과문을 쓰라”고 촉구하였으나, 당시 불가능한 일임을 설명드리고 난색을 표하였습니다. 트위터 정책을 제가 어찌할 수 없었던 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5월 11일(목) 오전 10시 경 공방 업무로 블루 사파이어의 거래 1차 미팅이 있었습니다. 보석 거래는 충분한 안내가 필요하여 여러 번의 미팅을 거치는 것이 보통입니다. 특히 고가의 유색 보석이라면 사무실에 해가 드는 오전에 약속 시간을 잡습니다. 유색석은 햇빛 아래에서 보면 남다른 아름다움이 드러나는지라 고객과 저는 보석을 조심스럽게 판에 들고 바깥에 나갔습니다. 그 때 (주)익선다다 의 박지현 사장의 성견 골든 리트리버가 목줄이 풀린 채 저희에게 달려와 보석을 관찰하던 고객에게 와락 달려들었습니다. “어… 어… 죄송… 어 죄송합니다. 어… 아…” 하고 소심하게 꾸벅이며 지나가는 박지현 사장의 반응에 저희는 더욱 당황하였습니다. 월인공방의 개업 초기부터 거래하며 때로 옆집 공사로 인한 흙먼지를 함께 들이쉬기도 해온 고객이라 “괜찮으십니까? 불법 공사 교사자 중 한 명입니다” 가리켜 드렸습니다. 경솔한 발언일 수 있었으나, 황당한 일을 겪은 고객은 뉴스로 이름 들었던 이웃의 무례함에 일관성이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괜찮다는 사인을 주었습니다. 다행히 보석도 무사했기에 상황은 일단락됐습니다.

 

(4) 5월 11일 오전 정오 경의 일

 

사파이어 미팅이 막 끝나고 정오 가까운 무렵, 이번에는 박지현 사장이 아니라 박한아 사장이 월인공방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고객님은 괜찮으시냐는 안부를 묻기 위해 방문한 것인 줄 알았는데, 다른 목적이었습니다. “아까 저희 박지현 사장에게 삿대질을 했다던데, 왜 저희를 그렇게 나쁘게 수군거리며 다니시냐”고 묻기 위한 방문이었습니다. 저는 “우리는 당신들을 대놓고 불법 공사 교사자라고 합니다.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무례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저희 옆집의 땅을 파다가 불법이라고 걸려서 다시 묻어 화단을 만드시고, 2층도 올렸다가 항의가 계속되자 내리지 않으셨습니까. 불법 공사를 교사하셨기 때문에 불법 공사 교사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대답했습니다.

이어서 “트위터에 저희에 대해 아주 악의적인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니시던데, 저희가 무슨 동네 어르신들을 돈으로 매수해서 월인공방에 어쩐다는 등” 하시기에 “아, 그것은 제가 아주 악의적인 시각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할머니에게 제가 큰 오해를 했다고 사과드렸습니다. 익선다다에도 모두 사과드립니다. 몇 달 공사에 시달리다 보니 제가 괴로워서 망상이 과했습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사과드렸습니다. “자꾸 그런 식이라면 명예훼손과 모욕죄로 고발할 예정입니다. 변호사와 상담하고 있어요” 라고 하시기에 “거듭 사과드립니다” 했고, 글을 지우고 공개 사과문을 올리라기에 그리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문제된 위의 트위터가 전파가능성 높은 발췌가 아닌 스크린샷으로 첨부된 것입니다.

직후 저는 할머니께 달려가, 박한아 사장에게 사과를 했고 저의 잘못을 모두 인정하여 그 일에 있어서는 화해를 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 이후에도 박한아 사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월인공방 사장이 악의적으로 헛소리를 지껄이고 다니는 것을 알고 있느냐”는 이야기를 저희 집주인을 비롯한 동네 사람들에게 하고 다녔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동네 어르신들이 “공사를 그따위로 했는데 월인공방 사장이 얼마나 괴로우면 그렇게까지 생각하겠냐, 그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벽을 때리면서 한 번이라도 얼굴 비추러 먼저 가보지 그랬냐” 도리어 꾸짖으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틀린 점이 있다면 크로스 체크를 할 수 있도록 피드백 주시기 바랍니다.

5월 11일 정오로 돌아와서, 트위터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보다 심한 농담이나 헛소리도 많이 오가는 과격한 일기장 같은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으나 “일기장에 왜 사실이 아닌 것을 쓰고 그러세요?”라는 호통이 돌아왔습니다. “박한아 사장님은 개인적인 일기장에도 객관적인 사실만을 나열하세요?” 여쭈었더니 “그럼요”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박한아 사장이 연이어 “아니, 왜 그렇게 정의로운 척을 하고 그러세요? 네?”라고 하셔서 저는 “저는 정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저도 여기에서 주민등록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돈 벌기 위해 들어온 상인입니다. 제가 누구 좋으라고 누구 편에 서겠습니까. 저는 돈 버는 것밖에는 생각이 없습니다. 불의와 타협도 잘 하고, 불리하다 싶으면 발 빼고 도망도 잘 다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정의로워서 쓴 글들이 아니라 정말 너무나도 괴로워서 끄적인 일기였습니다” 답했습니다. 그러자 박한아 사장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러면 대체 저희에게 왜 이러세요? 저의가 뭐예요?” 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내가 모르는 나의 음흉한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저의는 무엇일까’ 생각을 하는 사이 박한아 사장은 “월인공방 사장님은 익선동에 빌딩이 들어오기를 바라시는 거예요? 저희가 한옥들을 지키지 않으면 여기는 주얼리 빌딩들이 다 밀어버리게 될 거예요. 정말 그런 것을 원하세요?” 라고 질문을 계속했습니다. 평소 전혀 생각해보지 못하던 문제라 똑똑하게 답변하지 못했습니다. 그 날 이후 한달 정도 생각해 보았는데, 지금도 별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한옥 살이를 매우 버거워하며, 특히 익선동 한옥의 실용성과 미적 가치에 대해 그다지 높은 평가를 하고 있지는 않은 사람입니다. 양옥보다 한옥의 관리가 더 어렵고 추위에 약한 것은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현실입니다. 익선동이 월세가 쌌던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저희 작업장이 먼저 자리를 잡았고, 저도 우여곡절을 거쳐 지금 자리에 사무실을 열게 되었습니다. 작업장 금속 분진이 없는 곳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는데, 어쩌다보니 간판까지 달게 되었습니다. 한옥의 실내 원칙에 어긋나는 서까래 또한 원해서 노출한 것이 아닙니다. 천장에 쥐똥이 가득하다기에 며칠을 고민하다가 울면서 직접 천장 공사를 했습니다. 예상도 예산도 없이 닥친 계약과 공사였기 때문에 을지로 건자재상에서 황토 몰탈 포대를 직접 옮기며 매일 땀을 바가지로 흘렸습니다. 이 동네의 ‘우둘투둘 못생겼지만 정겹게 깨진 보도블럭’은 장애인과 노인들에게는 한숨 나오는 환경입니다. 공간이란 사람을 위해 손질되고 개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한옥을 지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저는 아직 잘 모르겠고, 고민하는 중입니다.

“주얼리 빌딩이 밀고 들어온다”는 말도 그렇습니다. 이른바 ‘종로 주얼리’라고 부를 수 있는 영역에만 한정하여 시장 상황을 볼 때, 저희 업계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지금도 서울 종로와 부산의 범일동 주얼리 상가 매대는 임대가 나붙은 자리들이 많습니다. 종로 대로변의 서울극장 앞 주얼리 상가는 곱창집이 된 지 오래입니다. 이 시장이 팽창하는 활황이었다면 종로 귀금속 시장의 랜드마크가 되겠다던 단성사 자리 주얼리 상가에 그렇게 오랜 공사 기간을 소요한 보람도 없이 빈 매장이 많겠습니까. 주얼리 빌딩으로부터 한옥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걱정은 그러므로 현실성이 없다고 보입니다.

서울 도심의 개발과 재개발, 임대와 공실 사태 문제는 복잡하고 심각합니다. 익선동의 변화가 ‘한옥과 옛것을 지키려는 의지’만으로 시작된 것일까요? 혹시 광화문과 시청, 강남 노른자 건물의 프라임 층 공실률까지,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불안감의 공유가, 교통의 요지에 있는 대안적 부동산으로서의 익선동에 대한 투자가 대두된 이유가 아닐는지요. 익선동을 키워드로 잡은 뉴스가 일주일에도 여러개가 쏟아져 나오고 알바일 수밖에 없는 조악한 프로필의 SNS 계정들이 20분마다 피드를 옮기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뉴스를 클릭해 보면 ‘또 익선동 익선동 지겹다, 역시 부동산 매물 홍보였네’ 같은 댓글들이 달려 있습니다.

생각보다 정의는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금전의 이동과 이해관계는 다양하게 얽혀 있습니다. 단적인 예를 들면 (주)익선다다 사무실이 위치한 운현신화타워에 낸 월세는 월곡주얼리산업진흥재단의 주얼리산업리포트 발간에 쓰이고 있습니다. 저희가 분기별로 정독하며 공부하는 자료입니다. 간접적으로 한국 주얼리 산업의 발전에 일조해 주시는 (주)익선다다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전합니다.

 

2. 특히 큰 일로 발전된 박한아 사장의 발언

 

위의 대화 중 박한아 사장의 특정 발언이 최근 다른 일로 발전하여 따로 항목을 빼어 작성합니다. “아까 저희 박지현 사장에게 삿대질을 했다던데, 왜 저희를 그렇게 나쁘게 수군거리며 다니시냐”는 박한아 사장의 물음에 “저희 옆집의 땅을 파다가 불법이라고 걸려서 다시 묻어 화단을 만드시고, 2층도 올렸다가 항의가 계속되자 내리지 않으셨습니까. 불법 공사를 교사하셨기 때문에 불법 공사 교사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박한아 사장은 “그런 식으로 트집을 잡는다면 익선동 전체가 불법이다. 마당에 뚜껑 올린 카페랑 음식점 모두 불법공사다. 왜 우리에게만 이러는지 정말 모르겠고, 다 영업정지 시켜보시라!”고 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2017년 6월 9일 현재 <별천지>의 모습입니다.

평소 궁금했던 것 두가지가 한꺼번에 해결되는 순간이었지만 쾌감보다는 씁쓸함이 올라왔습니다. 제 첫 번째 궁금증인 한옥에 2층을 올리는 <별천지> 공사가 불법인가라는 질문에 박한아 사장의 답은 ‘그렇다’ 입니다. 두 번째 답변 얻은 바는 ‘왜 이렇게 뜨는 동네에 한옥 소유주나 자제들이 직접 카페나 음식점을 개업하지 않고 남에게 임대하거나 팔고 떠나는가’라는 평소 궁금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한옥 마당에 뚜껑을 덮어 실외를 실내로 만든 익선동의 모든 업장이 불법이라는 것은 박한아 사장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그 순간 적잖이 놀랐습니다.

익선동에서 이웃을 계속해서 떠나보내는 가슴 아픔을 트윗으로 기록하면서도 재개발에 대한 가치판단이나 한옥 보존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내비치지 않은 이유는, 재개발이라는 것이 너무나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며 그것의 추진과 무산이 문화유산의 보존 가치에 대한 합의 도출보다는 필지 분할 방식과 보상금에 더 크게 좌우되는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이든 동산이든 값이 오르면 팔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값이 올라도 팔고 싶지 않은 사람도 존재합니다. 판매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정 때문인 사람도 있고 앞으로의 소장 가치 상승을 기대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주)익선다다가 한옥을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이미 익선동은 더 큰 돈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빌딩이 들어서는 식의 재개발은 근래 몇 년간의 추세로 보았을 때는 요원하다고 들었습니다.

2015년 전후로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가장 강력하게 적용시키는 재개발예정구역 해제 공지와 함께 카페와 음식점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밀려들어오기 전까지는 누구라도 무언가 시도하고 공간에 투자하기를 망설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동네는 정화조도 없는 푸세식 화장실들이 많았고, 가혹한 겨울 우풍 드는 한옥이었지만 이중 샷시창을 설치한 집들도 드물었습니다. 그것을 감수할만큼 고생이 익숙한 이들만이 낡은 주거환경이 반영된 월세를 내고 이 동네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재개발 예정구역이 해제된다는 것은, 이왕 양옥이 되지 못하는 한옥을 잘 고쳐가며 살거나, 한옥을 개조하여 주거 외의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는 길을 모색하는 시작입니다. 공간에 투자를 해도 될 거라는 청신호가 켜졌지만, 집주인이나 집주인 가족이 직접 나서는 일이 거의 없던 이유는 이 동네를 가장 포토제닉하게 만드는 요소가 노골적인 불법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틈새를 파고들어 한옥의 가치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생활인들이 불법이기 때문에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지점을 뚫고 들어온 것이었구나, 퍼즐 하나가 쿵 소리를 내며 맞춰지는 것 같았습니다. 푸세식 화장실이 우리를 지켜줄 거라던 순진한 자조의 표정이 가슴 아프게 스쳐지나갔습니다.

익선동의 감성 풍경, 반전 매력, 한옥의 변신은 무죄, 문화공간이라는 많은 사진들 대부분이 불법 증개축의 결과입니다. 이는 사실의 영역입니다. 불법의 평등성을 주장하며 만연한 불법은 불법이 아니라는 식이 박한아 사장의 주장입니다. 그로 인해 현재 익선동 한옥마을의 거의 모든 요식업장은 불법건축물 의심으로 종로구 건축과에, 소음 유발과 식품위생법 위반 의심 등으로 종로구 환경과에 민원신고 되어 행정처분을 앞두고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이 동네를 매우 좋아한다. 시장의 취향이므로 불법이더라도 눈감아 줄 것이다”라는 의견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취향 행정, 사단장이나 장학사로 대표될법한 윗선 눈치보기의 반응을 예상하였기에 지금까지 종로구 구청과 서울시 공무원들이 익선동의 불법 의심 건축과 영업 행위에 대해 눈감은 정황을 수사하는 공직 시민감사도 함께 진행중인 것으로 들었습니다. 왜 들었다고 하냐면 민원 신고자가 저희 고객이기 때문입니다.

구매를 위해 월인공방에 방문하였다가 (주)익선다다 박지현 사장이 풀어놓은 대형견의 습격을 받았으나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한 저희 고객이 민원을 넣었음을, 익선동 상인 카톡방이 시끄러워진 다음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박한아 사장이 설마 공방에 제가 혼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찾아와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언성을 높여 도발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누가 들어도 상관 없을 내용이었기에 당당하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개가 달려든 것에 대한 민사 소송은 최선을 다해서 막았습니다. 그러나 고객이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까지 예상하고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업주 분들께서는 ‘누군가 악의적으로 자세한 사진을 첨부하여 찔러 넣었다’고 하시던데, 그냥 모두에게 공개된 인스타 사진만으로 신고서를 작성했다고 합니다.

이번 일로 고초를 겪으시거나 영업정지, 혹은 시설물 철거에 대한 이행강제금 집행이 예정되신 분들께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친애하는 익선동 상인들에 대한 가해를 교사하시게 된 박한아 사장에게 유감을 표합니다.

III. 結

 

(주)익선다다 박한아 사장의 요구에 월인공방 송진경 사장이 응답합니다. 박한아 사장이 요청한 다음의 세 가지의 업무 중 두 가지를 수행하고 한 가지는 거절합니다.

 

(1) (주)익선다다가 한옥의 2층을 올리는 불법공사를 수행하는 인부에게 식음료조차 제공하지 않는 가혹한 방식으로 공사를 강행하는 것 같다는 악의적인 의심을 트윗한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트위터 삭제 요청에 응합니다. 공사감독 없이 일하던 인부 중 1인이 월인공방에 식음료 제공을 요청해 왔다는 것만으로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주)익선다다에 대한 악의적인 추측성 트윗을 게시한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박한아 사장의 요청대로 이에 대한 트윗을 삭제하여 잘못된 정보의 리트윗을 차단하였습니다.

(2) (주)익선다다가 익선동의 일용직 노인들을 이용하여 월인공방에 <별천지>의 개업 소식을 전했다는 악의적인 의심을 트윗한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트위터 삭제 요청에 응합니다. (주)익선다다의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공사에 수 개월 간 시달린 고통으로 인해 이성이 마비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주)익선다다를 향한 악의적인 트윗을 작성한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박한아 사장의 요청대로 이에 대한 트윗을 삭제하여 잘못된 정보의 리트윗을 차단하였습니다.

(3) 익선동 한옥 개조 음식점 전체의 불법 여부를 조사하는 민원을 넣어 카페 음식점 등 타 업체에 영업정지를 시키라는 박한아 사장의 도발에 월인공방은 상인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응하지 않겠습니다. 월인공방은 주류를 이루는 요식업이나 상인 모임인 ‘익선다락’의 구성원은 아니나, 누군가에게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는 명백한 불법이 아닌 이상 성문법보다 공동체의 상도의를 우선합니다.

 

무조건적인 사죄 요구는 양심의 자유에 반하는 위헌적인 강요입니다. 사과할만한 이유가 일어난 배경을 밝혀 실수에 이른 경위를 설명하고 그 과정에서 저지른 잘못된 판단에 한정한 사과를 전하는 것이야말로 사과문의 작성 의미일 것입니다. 포괄적인 사죄는 오히려 사과를 요청하는 이에 대한 모욕과 조롱에 다름 아닙니다. 이로써 (주)익선다다의 박한아 사장이 요구한 공개사과문을 일단락 합니다.

IV. 添

 

1. 익선동 상인 분들께 올립니다

 

익선동에 생업의 적을 두고 동네의 부흥이 개인의 영달과 깊이 관련되신 분들 중 몇몇은 저에 대한 원망을 숨기지 않으신다 들었습니다. 익선동에 찾아오는 이들 중 월인공방을 아는 이는 드뭅니다. 검색 업체에서 권유하는 홍보도, 잡지 등 매체의 인터뷰도 모두 거절하고 있습니다. 공방 자리 대여나 체험 수업도 운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명하지도 않고 유명해 지려고 하지도 않는 이가 무슨 영향력이 있겠습니까. 간혹 트위터에 하찮은 영향력이 있어 소수의 사람들이 월인공방의 관점에 감응하여 익선동 방문을 망설인다 해도, 이곳 방문을 예정하는 고객층과 겹칠 가능성은 낮습니다.

저 개인이나 월인공방은 다른 배경이나 연줄 없이, 작업만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동네의 변화를 무조건 반대하지도 않습니다. 동네에 새로 카페가 생기자 고객들을 맞이하며 함께 그곳에서 차도 여러 번 마셨습니다. 첫 결혼반지 주문을 <뜰안>에서 받았습니다. 영화 <검은 사제들>과 <해어화> 자문을 <식물>에서 했습니다. 업계 어르신들을 모시고 제 또래 여성들이 의기투합했다며 <익동다방>에도 자주 모시고 갔습니다. <별천지>의 공사가 거의 끝나갈 때 쯤 박한아 박지현 사장과 다른 (주)익선다다의 사람들이 모여 공사의 마무리를 논할 때 제가 “저희 쪽이랑 맞닿은 벽 방음 시설 좀 잘 부탁드립니다” 했을 때에도 박한아 사장이 처음 한 말은 “어머, 저희 익동다방에 자주 와 주시던 분이시잖아요? 왜 요즘에 안 오세요?” 였습니다. 제가 월인공방 사장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좀 놀라는 것 같더군요.

예전에는 익선동을 걷다 보면 ‘어머 이런 곳이 있어, 나는 정말 몰랐다 야’ 이런 탄성을 들을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많이 바뀌었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정말 안됐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거리에서, 카운터에서 체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한 시선의 비판적인 변화는 월인공방의 트위터 때문이 아니라 박지현, 박한아 사장의 중앙일보 인터뷰 “느림과 쉼의 미덕이 살아있는 동네 만들어야죠”와 조선일보 인터뷰 “‘익선동 왕언니’ 아나운서 때려치고 월매출 1억 5천 달성”이 페이스북을 통해 퍼져나간 이후 두드러졌습니다. 지인들이 페이스북에서 보았다며 익선동 생활의 안부를 물어 주어 뉴스가 회자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회사의 설립 목적이 이익의 창출임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유념하고 있다는 것을 변명 삼아 때때로 그것에 충실하지 못함에 주변인과 고객들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주)익선다다에 대해 악의적인 오해를 하여 본 사과문의 요청을 받은 일 또한, 벽을 공유하는 옆집으로부터 직접적인 피해가 지속되고 양해 요청이 무시받은 이후 일어났습니다. 무언가 변한다고 느껴진다면 원망하기 손쉬운 대상을 찾기보다는, 다만 유행의 오는 속도와 가는 속도가 같다는 것만을 기억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박지현 박한아 사장을 위해 동년배 여성으로서 싸워왔던 나날들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데, 저는 익선동이 주거공간으로만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정책적으로 이 곳의 새로운 상업시설 진입을 막고 누군가의 일상을 보존이라는 미명 하에 박제하고자 했다면 오히려 윤리성에 의문을 제기했을 것입니다. 한옥의 삶은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이 지역이 변화하거나 보존되는 와중에, 누군가의 삶이 명백한 불법의 방식으로 갈려 나가고 있다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가 저여도 괜찮지 않을까 했을 뿐입니다. 때로 법의 영역이 아닌 곳에서 도의로 움직인 적도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정의로운 척 하지 말라고 비아냥 댄다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도의에서 비롯된 움직임과 발언 대부분은 박한아 박지현 사장 두 분을 위해서였습니다. 지금까지 공공연하게 말할 기회도, 필요도 없었지만, 공방 주변의 사람들과 (주)익선다다를 거쳐간 홀서빙 직원분들은 짐작하고 있을 이야기입니다.

박한아 박지현 사장이 익선동에서 익동다방을 꾸린다고 했을 때 저는 몹시 기뻤습니다. ‘이런 곳에서 고생하는 또래 사람들이 있구나. 잘 해주고 싶고 친해지고 싶다. 매일 팔아주고 싶은데 내가 돈이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김에 월인공방도 인스타그램을 시작해서 공방 포트폴리오도 올리고 동네 사람들 홍보도 해 주자’ 거북이 슈퍼에도, 식물에도 그런 마음으로 자주 갔습니다. 익선동에 식당이 개업했다고 할 때마다 찾아가 개시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메뉴들을 모두 시켜 먹어 보았습니다.

저 혼자서 익동다방의 유일한 손님인 때가 많았습니다. 박지현 사장이 만들어 주는 익동다방의 봄 한정 메뉴 절구 딸기 라떼를 먹으며 “익선동은 예전에 익동으로 불렸대요. 저희는 식물이 들어오기 전에 먼저 개업했어요. 그쪽이 먼저 유명해져서 모르실 수 있겠지만… 이 동네에 남다른 애정이 있어요” 개업담을 들었습니다. 한옥을 손보고 손질하는 고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동년배 여성이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고객과 함께 익동다방에 가서 아이스 라떼를 마셨고, 업계 선배라며 저녁과 술을 사 준 분을 모시고 3차는 골목으로 숨은 한옥에서 샹그리아를 쏘겠다며 비틀거리를 걸음을 부축해 박한아 사장에게 인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갔던 기억은 업계인 인터뷰를 한다는 학생들과 함께였습니다. 학생들이 무슨 돈이 있겠냐며 마음대로 시키고 사진 예쁘게 찍어서 인스타에 올려 달라고 했습니다.

<열두달>도 좋아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익선다다인 줄 모르고 찾던 곳이지만, 알았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의 회사가 다수의 브랜드를 내는 것은 비난할 전략이 아닙니다. 다만 같은 회사의 적당히 다양한 가게들이 다수결이 필요한 자리마다 같은 목소리로 한 표를 행사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는 비단 동네 자치라는 사안 뿐만이 아니라 세금이 소요되는 각종 지원금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익선동의 지명 가치 상승으로 인한 수혜 대상에 월인공방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세금을 내는 국민으로서 이에 대해 의문을 갖지 못할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주)익선다다의 다음 프로젝트라는 <경양식 1920>이 개업했을 때, “여기가 이제 익선동 골목 끝인가봐”라고 하는 저희 외진 골목까지 심상치 않은 술렁임이 전해졌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노란 머리 기집애 둘이 돈이 아주 많은지 식당을 여러개 하며 동네를 다 사들인다고들 수근댔습니다. 경양식 1920에 찾아가서 홀에 있는 박지현 사장에게 찾아가 “저…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익동다방 말고도 여러분이 동네를…”까지 말했을 때 밝은 목소리로 “익선동은 예전에 익동으로 불렸대요. 저희는 식물이 들어오기 전에 먼저 개업했어요. 그쪽이 먼저 유명해져서 모르실 수 있겠지만… 이 동네에 남다른 애정이 있어요”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이상한 느낌에 돌아 나왔습니다.

“노란머리 애랑 너랑 나이가 비슷할 거다. 친구 해라”, “박한아 걔는 결혼했댄다. 너는 언제 하려고 일만 하니. 여자는 남자 만나 아이 낳는 게 가장 큰 행복이다. 너도 박한아같이 잘 살아라”던 동네 어르신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그런 말씀을 줄이기 시작한 것은 <낙원장> 공사를 보면서입니다. 동네 분들의 말씀이 거칠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장을 향해 생경하고 무서운 원망과 저주를 퍼붓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저는 항변했습니다. 젊은 여성들의 새로운 시도를 변명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제가 박지현 박한아 사장이 젊은이이자 여성으로서 주목받는만큼 구설수에 오르며 모욕당하던 것을 바로잡으려 했고, 남다른 추진력은 선의와 낙관이 아니면 불가능함을 말하며 불순한 의심으로부터 두 사람을 지켜주려 했던 것을 아는 이들은 거의 떠났습니다.

저는 당신들의 지향 가치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실제 거의 모든 업장의 거의 모든 메뉴를 꽤나 초기에 직접, 혹은 소개자로서 간접적으로 음미했습니다. 제가 의미있는 피드백을 준 고객이었다거나, 혹은 직간접적으로 당신들의 많은 투자자 중 한 명일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일까요? 그런 생각은 전혀 해 보신 적이 없으신지 그냥 의문이 듭니다.

 

3. <별천지> 개업 이후의 날들

 

일용직 노인들이 방문했던 4월 27일(목) 다음날인 4월 28일(금), 별천지가 제대로 개업 파티를 했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주변이 어둑해지자 커다란 우퍼 스피커의 진동이 시작되며 실내에 흙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좋았던 일 하나는 반 년 동안 주민들이 요청하던 공사장 앞 먼지 물청소가 처음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주)익선다다는 익선동 주민들의 안녕과 동네 청소에 앞장서는 바른 기업임을 의심치 않았기에 매우 기뻤습니다.

다음날부터는 비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음량을 시험하는 단계였는지 소리가 아주 큰 날도 있었고, 커널형 이어폰을 틀어막고 볼륨을 올리면 견딜만한 날도 있었습니다. 생활하고 쉬는 공간이 갑자기 견디는 공간이 된 것부터 힘이 들었지만, 어느 정도까지 음량을 올리면 사람이 참지 못하고 나오는지 시험이라도 하나 싶을 때에는 소음에 노출된 흰 쥐들이 왜 빨리 죽는지 잘 알겠다는 기분이 들어 비참했습니다. 지금만 잘 넘기면 이 다음 곡은 조용할 수도 있다며 분노를 삭히며 기대를 하다가 좌절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귀가 아프게 새끼 손가락을 찔러 넣어도 보고 결국에는 전화기를 들 힘조차 잃고 벽에 머리를 찧으며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인 5월 25일(목) 저녁에는 박한아 사장이 저희 공방 안쪽에 살고 계시는 주인댁을 처음으로 만나뵙고 이야기 나누었다는 내용을 들었습니다. “당연히 카페같은 거나 하는 줄 알았지 무슨 클럽이라며. 어떻게 가정집 옆에 이런 것이 허가가 나는지 난 정말 모르겠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갑자기 시작되면 내가 아주 돌아버린다. 갑자기 열이 확 뻗치게 된다니까. 불법 공사 신고는 내가 했다. 2층 올린 거 불법 아니냐. 그래도 돈 벌려고 하는 일인데 내가 그런 것을 끝까지 트집잡을 일은 아니고 제발 소리만 조금 낮춰달라”는 주인집의 부탁에 박한아 사장은 “자꾸 불법 불법 하시는데 저희 뚜껑 떼어버리면 더 시끄러워져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견디실 수 있겠어요? 였던 것 같았다고도 합니다)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들었습니다.

당일 저녁 또 다시 소음으로 출동한 경찰에 맞서 “자꾸 누가 소음 신고를 해서 저희 영업을 방해하시는데, 저희 변호사 통해서 정보공개 청구 할거예요. 정보공개 청구 해서 소음신고 한 사람들 다 영업방해로 고소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여기저기 들으라고 크게 말씀하셨다더군요.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그냥 고생하실 필요 없이 저 하나만 넣으셔도 됩니다. 아마 제가 가장 자주 소음신고를 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부르지 않아도 경찰이 자주 출동하긴 하던데, 그래도 제가 부르거나, 제가 너무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보고 주변인들이 신고한 적이 더 잦을 것입니다. 동네 아주머니도 신고하셨다고 들었고, 아저씨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주변인들은 문자로 한 적도 있고 전화로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고를 결심하고 실행할 때마다 매번 긴장되고 떨렸습니다. 절대로 익숙해 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잘못하는 것 같고, 내가 예민해서 남을 괴롭히는 것은 아닐까, 이래도 되는 걸까, 해코지나 보복을 당하면 어쩌지 두려웠습니다. 다른 이들도 같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옆집과 공사 문제로 큰 소리가 나고 개업 후에는 밤에 성인 취향 음악의 디스코 비트 소리가 남에 따라, 매일 저녁까지 있던 주인집의 어린 손녀가 더이상 머무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인집은 옆집의 공사와 개업에 대해 낮 시간에 종로구 공무원들을 부르기로 했고, 저는 밤에 소리가 너무 커지면 소음신고를 하기로 했습니다.

5월 25일에 그런 협박같은 말을 동네에 외치셨지만, 5월 30일에 손님이 없어 간판을 옮겨다는 공사를 하고, 6월 초인 지금도 그 곳을 지나가는 사람은 ‘아직 공사중인 것 같은데 영업을 하는 건가?’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영업방해의 증거로 제출할 POS와 CCTV 기록이 있다면 그냥 저를 걸어 넣으십시오. 만용이나 시비가 아닙니다. 매우 두렵고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위험의 감수나 책임을 회피한 적이 없기 때문에 제품의 품질에 직결되는 동료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아 왔습니다. 그것이 저의 직업이며 지위입니다.

 

4. 이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1) 정독해 주신 익선동 공동체 여러분께

 

익선동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이 사과문을 읽어주신 입장이라면, 근래 요식업 상인 분들께 일어난 고초의 빌미 되는 현장에 있었으면서도 차마 이리 되리라고 예상하거나 막지 못한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유감을 표합니다. 개업 이후 여러분의 하루 하루가 달랐던 만큼, 저희 사무실과 작업장의 매일도 달랐습니다. 공격과도 같은 물리적인 변화도 있었지만, 특히 월인공방 사무실과 같은 간판이 없어 겉보기에 가정집과 별다를 바 없어 보이는 작업장에서는 동네를 떠난 주민들과 비슷한 심리적 압박에 계속 고달팠습니다. 무엇을 보기좋게 진열하거나 체험을 호객하지 않고, 원만해 보이지도 않는 기술자들의 고집스러운 작업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탐탁치 않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저희 작업장의 집주인에게 계속 전화를 하여 시달리다 못한 집주인이 찾아와 당신들을 쫓고 싶지 않다며 하소연을 하게 만드는 중개업자도 있었습니다.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의 대표제안자이신 성도부동산 천명수 대표께서 발의하시고 상인 여러분께서 좋은 마음으로 서명을 모아주신 ‘익선동 한옥 활용에 대한 결의안’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동네 한옥의 용도가 미풍양속에 부합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요식업 체인점들이 들어선 소위 ‘뜨는/한물 간 다른 동네들’처럼 되지 않도록 종로의 독특한 공방 풍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2015년에 간판을 단 쇼룸, 아니 지금은 사무실로만 부르는 월인공방에 의욕적으로 마련한 공간을 놀리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결국 떠나게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던 입장에서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2년여 전 동네에 사무실 쓸 공간이 있다며 알려준 한복집 바느질 아주머니는 천과 재봉틀을 꾸려 다른 보금자리를 향했습니다. 동네가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사무실 자리를 소개해 주었다며 마음고생 시켜서 미안하다고 하며 떠났습니다.

안팎으로 동네의 변화를 체감하는 저희로서는 당연히 서명에 동참하기 위해 내용을 검토하였습니다. 결의안이 특정 권역에서 퇴거시 이주비를 지원한다거나 퇴거 압박의 중단을 요청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는지, 특히 종로3가의 중요한 구성원이자 공방의 고객층인 LGBTQ 업소를 배제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몇 초도 걸리지 않는 서명이었지만, 종이가 무슨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 무겁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저희 집주인과 작업장을 압박한 부동산 중개업자가 바로 성도부동산의 천명수 대표였다는 것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믿을 수 없어서 사진을 보여드리며 두 번 세 번 확인하였으나 사람에 대한 기대를 잃지 않은 순수한 사람이라는 듣기 싫은 칭찬만이 돌아왔습니다. 정색을 했기 때문에 더는 찾아오지 않고, 요즘은 종로부동산이라는 곳에서 국내 최고급의 기능장을 비롯한 내로라 하는 세공기술자들을 쫓아내라고 닥달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연이은 혼란에 마주하여 결의안 서명에 동참하지 못하였으나, 혹시 여러분의 결의안이 익선동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드는 저희 공예인들을 지켜주실 수 있다면 염치불구하고 긴급한 발효를 요청드립니다.

(2) 응원하고 지켜봐 주신 여러분께

 

귀금속과 보석은 아주 특별합니다. 우리는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지구의 파편을 찾아내어 아끼다가 주인에게 보냅니다. 이 곳에 조심스럽게 상담을 문의하는 이들은 자신이 그토록 바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음에 놀랍니다. 떠나간 이를 변치 않는 물질로 기억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처음 발견하기도 하고, 싫어하는 이를 닮아 혐오하던 스스로를 보듬기로 약속하는 뭉클한 순간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죽지 않고 살고 싶다, 가장 아끼는 것을 물려줄 아이를 낳고 싶다는 표정의 목격자가 되기도 합니다. 순도 높은 슬픔과 기쁨이 각별한 온기로 월인공방을 채워 왔습니다. 이 모든 일에 굳이 저의라는 것이 있다면, 사과문에서 드러나는 저희의 일관되고 부단한 일상과 같이, 모든 물건이 생각보다 큰 책임감과 사려깊은 고민 속에 만들어져 왔음을 의심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과거와 미래의 주문자를 향한 보고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큰 격랑이 온다면 모쪼록 피해 가기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해도 의연하기를 기도해 주십시오. 추잡한 마케팅과 부실한 사과문이 횡횡하는 시대에 잘못된 길로 가는 조짐이 보이거든 외면하지 마시고 번거롭게 성장할 기회를 함께 해 주십시오. 어디에 있든 본연의 품위를 잃지 않고, 기억되고 기록되는 것을 무섭고 중히 여기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황량한 냉기가 감돌던 이 곳에 사람이 드나들어야만 어릴 수 있는 온기를 나눠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3) 시대고독

 

박노해

 

한 시대의 악이

한 인물에 집중되어 있던 시절의 저항은

얼마나 괴롭고 행복한 시대였던가

 

한 시대의 악이

한 계급에 집약되어 있던 시절의 투쟁은

얼마나 힘겹고 다행인 시대였던가

 

고통의 뿌리가 환히 보여

선과 악이 자명하던 시절의 결단은

얼마나 슬프고 충만한 시대였던가

 

세계의 악이 공기처럼 떠다니는 시대

선악의 경계가 증발되어 버린 시대

더 나쁜 악과 덜 나쁜 악이 경쟁하는 시대

합법화된 민주화 시대의 저항은 얼마나 무기력한가

 

구조화된 삶의 고통이 전 지구에 걸쳐

정교한 시스템으로 일상에 연결되어 작동되는

이 ‘풍요로운 가난’의 시대에는

나 하나 지키는 것조차 얼마나 지난한 싸움인가

 

옳음도 거짓도 다수결로 작동되는 시대

진리는 누구의 말에서나 반짝이지만

그것을 살고 실천할 주체가 증발되어 버린 시대

혁명의 전위마저 씨가 말라가는

이 고독한 저항의 시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