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선동의 나날들

익선동의 나날들

위의 사진은 다음 지도 익선동 2013년 1월 로드뷰 입니다. 작업실 동료들과 매일 이 길을 지나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변화는 갑자기 시작되었습니다. 매일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문을 두드리고 인사하던 이들이 떠나갔습니다. 누군가 쓸고 닦으며 살던 집을 버려지고 황폐한 풍경으로 연출하기 위해 심하게 부구는 공사가 연일 계속되었습니다.

살아오던 익선동이 살아내는 곳이 되어가는 기록 월인공방주 트위터 계정. 정신 놓고 쓴 오탈자가 많으니 자체 교정을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성급히 잃어 온 공간들에 기대어, 상실과 체념을 추억하는 바깥으로부터의 유감들. 익선다다의 “느림과 쉼의 미덕이 살아있는 동네 만들어야죠” 기사와 오마이뉴스 “‘가난 포르노’ 때문에…” 3년새 주민 30% 사라진 동네 기사 전후 익선동 관련 트윗 모음입니다. 과격한 표현이나 욕설 등은 배제하였습니다.

최근 트위터에서는 우리가 잃어 온 골목들에 대한 추억, 공동체를 이해하는 정책의 부재, 전시 행정 등에 대한 비판, 나아가 젊은 세대의 빈곤과 낯선 가난의 대상화에 대한 토론 및 소위 힙스터의 미감이 어떤 해외의 시도와 양식을 열화 복제한 것인지 등에 대한 원전 찾기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매체 특성 상 직접적인 해쉬태그나 키워드 없이 다발적이고 광범위한 토론이 이루어집니다. 그 일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익선동의 마스코드, 네눈박이 발바리 익선이입니다.

지금은 이사 가신 성원슈퍼 앞 주짓주 아저씨가 키우던 고양이 다순이가 너무 어려 죽은 날, 주름 깊은 동네 사람들은 “동물이라는 게 그렇게 돈이 많이드는 것일 줄이야! 왜 정을 주었대요” 하면서도 함께 슬퍼하며 빨갛고 파란 의자로 모여 병맥주를 땄지요.

동네 사람이지만 익선동이라는 행정구역에서 스무 걸음 정도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익선동 공동체’에 들 자격이 없었던 돈의동의 정수종합설비 하얀 포메라니안이 새끼를 쳐 준 하얀 강아지 똘이네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떠나기 전까지 “어머니, 사진 좀 찍게 들어갈게요. 가만히 계세요”라는 관광객들을 독려하는 <익선동 사진 콘테스트> 마을 축제에 눅어가던 일상이었지만, 그래도 계속 살던 곳에 사시고 싶다고 했습니다.

서로의 영정사진을 보관하고 계실, 익선이네 할머니들 쪽방 한옥을 빨리 비워달라고, <뜰안> 사장님이 독촉을 하신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그 분은 주민들에 대한 배려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시는 분이시다. 그러실 분이 아니시다” 항상 말씀을 드린답니다. 누구신지 모르지만 동네 할머니들을 더 이상 슬프게 하지 말아 주세요. 익선동에서 가장 귀여운 강아지 익선이를 내쫓지 말아 주세요. 익선이가 ‘묘’나 ‘계’, ‘돈의’ 같은 이름이라면 영 이상하잖아요.

이 게시물을 쓰고 약 1년 후인 2018년 4월, 네눈박이 강아지 익선이를 함께 키우시던 한복 할머니들도 쫓겨나셨습니다. 옆집인 마당 플라워 카페의 소음과 관광객들의 주거 침해로 매일 고통받으셨으므로 이제라도 평안하시기만을 바랍니다.

원문보기: 김명지. 『한옥은 남는다, 한복은 떠난다.. 종로 익선동의 현주소』 노컷뉴스, 2018